[뉴스핌=장주연 기자] 대립군(代立軍). 있는 자들의 군역을 대신 치르다.
배우 이정재(45)가 신작 ‘대립군’으로 극장가를 찾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 파천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돼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의 이야기를 다뤘다.
“국가의 원수만 리더는 아니죠. 우리 영화는 친구, 회사 등 어디에나 존재하는 리더에 관한 이야기에요. 다만 조금 더 영화적으로 풍성하게 보이고자 왕, 세자, 대립군이 등장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은유적으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관객 역시 너무 정치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하죠. 그러려고 만든 영화도 아니고요. 사실 정치적 색깔, 사회적 흐름에 맞춰서 뭔가를 한다는 건 오히려 위험해요. 영화는 역시 영화인 거죠.”
극중 이정재가 맡은 역할은 대립군의 수장 토우다. 조상 복 없고 배운 것 없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의연한 대처 능력, 판단력에 우직한 의리까지 갖춰 동료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는 대립군의 대장이다.
“대립군에 관해 몰랐고, 찾아봐도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그들이 있었다’는 정도였죠. 그래서 영화사에서 준 자료를 많이 봤어요. 거기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았고요. 개인적으로는 수양대군(관상, 2013)과 달리하자는 생각이 컸죠. 몸동작서부터 말투까지. 우선 신분차이가 크잖아요. 당연히 살아온 방식도 다르죠. 한 가지 같았던 건 수양대군을 연기할 때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많이 상상했고 토우도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가?’라는 상상을 많이 했죠.”
역사 속에 희미하게 기록된 대립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촬영 전 숙제였다면, 촬영 시작 후에는 또 다른 숙제와 고충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촬영이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된 터라 육체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에서 찍을 때는 정말 먹을 게 없었어요. 식사의 절반이 김밥, 주먹밥이었죠. 밥 차가 올라가거나 음식을 나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다들 성품이 좋은 배우들로 구성돼 재밌고 좋았죠. 다만 산에서는 촬영 때문에 여력의 시간이 없어서 내려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여)진구와도 같이 소맥 마시고 했어요. 제가 옛날 스타일이라 독하게 타는 편인데(웃음) 잘 마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많이 친해졌죠. 젊은 친구인데도 태도나 자세가 아주 진중해요. 게다가 잘도 하고. 아주 좋은 젊은 동료죠.”
배우들이 이토록 고생해 전달한 메시지는 결국, 진정한 리더는 백성이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정윤철 감독은 대립군을 현세대의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유, 그들이 ‘나’에 관해 생각하고 나답게 사는 것을 되찾는 과정을 녹여냈다.
“비정규직의 설움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 역시 비정규직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 배우들에게 그런 불안감이 다 있고요. 안타깝게도 우린 잘린 다음에야 그때 잘렸다는 걸 알죠. 배우 안정권이요? 그런 건 없어요. 연기하는 사람은 안정권을 믿지 않죠. 안주할 수 없는 태생적인 구조로 돼 있거든요. 그건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도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열정이 생기는 직업이라 매력적이죠. 얼마 전에 최민식 선배를 뵀는데 아직도 뜨겁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후배로서 자극을 받았어요.”
최민식 외에도 요즘 그에게 자극이 되는 이들이 또 있다. 아티스트컴퍼니(동갑내기 절친 정우성과 이정재가 지난해 5월 공동 설립한 연예기획사) 식구들. 배우에서 사업가로 포지션을 확장하며 달라진 점을 묻자 뜻밖에도 “아무래도 제 일을 조금 더 잘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회사를 만들고 보니 (정)우성 씨나 제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작품을 더 열심히, 더 많이 하는 거더라고요. 그게 소속 배우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죠. 회사 분위기요? 가족 같아요. 회식은 너무 자주 해서 간이 피로해있죠(웃음). 계약 과정은 다양해요.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하고 우연히 현장에서 회사에 관해 묻다가 함께 하기도 하죠. 기준은 단 하나예요. 자기 일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느냐. 얼마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의가 있느냐에 온도 차이가 있거든요. 전 그 열정만 있다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뜨거운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식기 마련. 열정 역시 마찬가지라고 받아쳤다. 물론 이정재는 망설임 없이, 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하면 할수록 뜨거워지는 게 연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데뷔 24년 차,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전하고 싶은 연기가 존재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요즘은 생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문득 생활 연기해본 적이 언젠가 생각해봤더니 꽤 오래됐더라고요. 마침 최동훈 감독님이 ‘도청’ 시나리오를 주셨는데 그게 생활 연기 캐릭터죠.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지만(웃음), 모처럼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할 기회가 와서 좋아요. 이번엔 (대중에게) 조금 더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배경은 1980년대 초반이에요. 이번에도 시대극이죠. 제가 선 굵은 분들에 비해서 여기저기 쓰기 좋은가 봐요(웃음). 잘생긴 분들과 비교했을 때 저같이 밋밋한 얼굴이 조금 더 유용한 거죠. 얼굴에 있어서 우성 씨랑 정반대 반응이라고요? 에이, 우성 씨 정도 생기면 그래도 되죠. 하하.”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