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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의 품격을 높인 대문호, 괴테

기사입력 : 2017년08월09일 11:30

최종수정 : 2017년08월10일 09:29

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2)

서울 남산에 위치한 주한 독일문화원 '괴테 인스티튜트' 전경 <사진=이철환>

“발하임으로 이주한 지식인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로테에게 한눈에 반한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접근하여 친교를 맺고 집을 왕래할 정도로 그녀와 가까워진다. 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져갈 무렵 갑작스레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발하임으로 돌아오면서 베르테르는 크게 실망한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로테를 향한 연정이 깊어지면서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와도 불편한 관계가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고자 발하임을 떠나보기도 했지만, 귀족사회의 퇴폐적이고 퇴영적인 모습에 좌절하여 다시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이미 유부녀가 되어버린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베르테르는 고통스러워하고,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친밀감과 호감을 느끼면서도 남편을 위해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고자 한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구애하며 키스를 시도하고, 당황한 로테는 베르테르와의 절교를 선언한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쏘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지식인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다. 이는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그 편지는 1771년 5월 4일에 시작해서 1772년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1774년 발표된 이 작품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작품 속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해서 자살을 감행한 사람이 2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베르테르식 열병을 우려한 나머지 소설은 1775년 판매금지 당하기도 했다.

이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하는 현상을 일컬어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부르고 있다. 완성에 거의 60년이 소요된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조차도 이 작품의 인기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작 괴테는 자신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로만 기억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독일 '질풍노도(Sturm und Drang)'운동과 바이마르 고전주의 운동의 지도자였고, 유럽에 낭만주의를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어는 '짐승의 언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천대받고 있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불어와 영어뿐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작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자 독일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괴테는 또 문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학식을 지닌 천재였다. 생물학, 해부학, 지질학 등 과학 분야에서 14권의 저서를 펴냈고, 화가로서 3천점에 이르는 그림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업적과 영향력을 기려 독일 정부는 자국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른 나라에 세우는 해외문화원의 명칭을 '괴테 인스티튜트(Goethe Institut)'라고 지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대학 졸업 후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있던 중 약혼자가 있는 샤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해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를 만나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건축· 회화· 조각 등 고대 조형예술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특히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1천점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다. 그리고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 생애에서 고전주의로의 지향을 결정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실러와의 상봉은 그의 문학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괴테와 이념적이며 분석적인 실러와의 문학적인 친교는 1805년에 실러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괴테의 대표적인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도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실러의 죽음으로 괴테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과 연구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시와 진실' 등 일련의 자서전을 저술하기 시작하는 한편, 이미 착수했던 창작의 완성에 힘썼다.

괴테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의 7년 전쟁,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점령기와 몰락 과정도 지켜보았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들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다.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 (Who never ate his bread in tears, Who never lay awake for hours Plagued by doubts and fears, Knows you not, you heavenly powers!)”

괴테는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여성은 괴테에게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었다.

그의 첫사랑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만났던 프리데리케 브리옹이라는 시골처녀였다. 그녀는 첫사랑이기에 괴테의 여러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괴테는 잠든 프리데리케를 깨울 때도 자신이 쓴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괴테는 점차 그녀에게 흥미를 잃어가게 된다. 이후 괴테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 드러난 ‘순진한 처녀를 괴롭힌 것에 대한 죗값’은 프리데리케에 대한 죄책감의 투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두 번째 사랑은 그 유명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하게 한 샤로테이다.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있던 1772년 괴테는 19세의 샤로테 부프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시기는 프리데리케와 헤어진 지 1년도 되지 않던 때였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 또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샤로테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은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 출간연도가 그들의 첫 만남으로부터 2년 뒤인 1774년이며, 주인공의 이름이 '로테'인 것 또한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즈음 친구 아내를 사랑하다 자살한 예루살렘이란 사람에 대한 뉴스는 괴테가 이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래서 펜을 든 지 불과 4주 만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괴테를 일약 최고의 문필가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괴테는 그때부터 독일적 인간 사상해방 문학운동인 '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샤로테 부프에 대한 사랑이 허망하게 끝난 뒤에도 그의 여성편력은 지속되었다. 바이마르 공국에서 공직생활을 할 무렵, 괴테는 유부녀인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을 만났고 그 관계는 12년 동안이나 이어진다. 그는 샤로테 부인과의 만남 속에서 인간적 및 예술적 측면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부인을 향한 애정과 동경, 질풍노도의 격정을 극복하고 절도를 지키며 체념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평정을 찾고 인간으로서 원숙해 갔다. 그러나 이 둘의 애정관계도 1786년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 오르면서 끝을 맺게 된다.

그 뒤 1788년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고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을 통해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지만 얼마 후 아내 불피우스가 죽자 사랑의 불길은 또 다른 여인에게로 향한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후 빌레머 부인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를 사모해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이 간행되었다.

괴테의 여성 편력은 그의 나이 72세가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1821년 여름, 그는 피서여행 차 체코 지방의 마리엔바트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알게 된 17세의 처녀 울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55세의 나이차가 있는 이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노인네의 추태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괴테 자신은 매우 진지했다. 당시 울리케는 괴테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그(괴테)는 아침에 산책을 나갈 때면 거의 매일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나는 함께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꽃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는 문 앞 긴 의자에 앉아 온갖 것에 대해 몇 시간이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대단한 학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신뢰했다.”

괴테는 그녀를 알게 된 지 2년이 되던 해 청혼을 하였는데, 청혼하기 전 의사에게 건강진단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청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크게 상심한 괴테는 그 연모의 정을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시집에 담게 된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읊었다. “울리케로 인해 나의 탄식은 멈추었다.”

괴테는 인생의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 로맨티스트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시를 쓰며 편지를 보냈다. 괴테는 자신의 삶을 세단어로 표현했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배웠노라.”

사랑을 통해 아파하고 고뇌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시인 괴테. 그는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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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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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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