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예지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열린 '브로드웨이 42번가'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뉴스핌=양진영 기자] 스무살에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데뷔, 고난도의 탭댄스와 업그레이드 버전도 그를 가로막지 못했다. 올해 24세의 히로인 전예지는 페기 소여와 가장 닮은, 드라마틱한 경력의 주인공이다.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명품 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이번 시즌 말 그대로 '42번가'의 히로인 페기 소여 그 자체로 불리는 전예지를 만났다. 이번이 3연째지만 전예지는 재차 오디션을 보고 새 시즌에 발탁된 탭댄스 실력자다.
"42번가는 저에게 정말 의미있는 작품이잖아요. 스무살에 이 작품으로 데뷔했고, 이번이 3연째니까요. 이번 시즌에 참여하면서도 마냥 즐거워요. 특히 이번엔 많이 바뀌고 업그레이드 된 장면들이 있어서 오디션 원서를 다시 내고 처음부터 다시 준비했죠."
"오디션은 두 번째였지만, 오히려 더 떨리더라"고 고백한 전예지. 실력이 탄탄하고, 그래서 자신감이 넘친다는 스태프들의 평가와는 정반대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오리지날 버전에서 더 고난도의 장면들이 추가된 '42번가'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마음 가짐도, 탭댄스도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사실 한 번 했던 거라 안떨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죠. 했던 건데 떨어지면 좀 그러니까 부담이 많이 됐어요. 다행히 감사하게도 다시 뽑아주셔서 기뻐요. 이미 이 역을 해봤지만, 이전에도 이미 많은 분들이 거쳐갔고, 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정말 많아요. 특별한 뭘 보여주기보다 예전의 나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1차 오디션 보고 받은 코멘트를 완전히 해내는 걸 보여드리려 노력했어요."
어린 시절 아역을 거치긴 했지만, 전예지는 스무살에 단숨에 대형 뮤지컬 주연으로 올라선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 페기 소여와 꼭 닮았다. 이 드라마틱한 데뷔 과정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당시에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제가 드라마틱하게 데뷔를 하게 된 게 사실 맞아요. 아역은 초등학교 때 단 한편을 했던 거라 경력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거든요. 그때는 그게 대단한 건줄도 몰랐어요. 그냥 오디션 보고 됐나보다 했는데 그런 경우가 정말 드문 거더라고요. 대단한 거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죠. 그땐 정신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어요."
표면적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고는 해도, 전예지 역시 페기 소여를 연기하면서 자연스레 한계에 부딪힌다. 그가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전형적인 페기 소여를 한층 빛나게 할 무엇을 연기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인데, 페기 소여가 좀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일 수도 있어서요. 그렇게 안보였음 해요. 주체성과 꿈을 가진, 누가 봐도 마음이 가는 캐릭터로 보이길 바라죠. 사실 매번 작품마다 연기가 가장 신경이 쓰여요. 노래나 춤은 바꾸면 바로 보이는데 연기는 정해진 대사와 스토리, 캐릭터가 있으니 바꿔봐도 티가 많이 안나죠. 그런 차별화를 위해 노력 중이에요."
'42번가'의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지배하는 탭댄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통틀어 단숨에 모두의 눈길을 끄는 전예지의 주특기다. 완벽한 탭의 비결을 묻자, 전예지는 의외로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처음 탭을 배우던 순간을 떠올렸다.
"절대 타고난 건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웃음) 제가 19살 때 오디션 반년 전부터 안무 감독님께 호되게 배웠어요. 발레 기본 동작부터 차근차근 연습을 시작했죠. 울기도 많이 울고 그때 매진한 덕을 보지 않았나 싶어요. 엄청 혼났고,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었죠.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도 열정이 있으셨던 거잖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고, 강하게 키워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나 이번 '42번가'에는 피아노 위, 계단 위에서 탭을 추는 고난이도 장면들이 여럿 추가돼 부담이 더했다. 전예지는 "당연히 부담스럽고 겁이 난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여전히 흔들리는 피아노와 무대. 완벽히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프로정신은 모든 배우들에게 필요한 덕목이기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다.
"피아노 위에서, 계단에서 춤 출 때는 정말 무서워요. 다른 것보다 진짜 사고가 날까봐요. 다쳐서 막을 내려야하면 어쩌나 긴장을 많이 하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지도 몰라요. 여전히 피아노는 흔들리니까요.(웃음) 한번 계단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흔들리고 불안하다고 바닥을 보면서 춤을 출 수는 없으니까요. 무대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날 박수가 가장 크게 나왔던 것 같긴 해요. 에녹 오빠와 춤을 추다 넘어졌는데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쳤었죠."
매 무대에 위험을 감수하고 오르는 페기 소여. 그럼에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역시 이 계단 신이다. '발레2' 장면에서 페기 소여의 솔로로 시작해 앙상블 모두가 합을 맞추는 10여분간 지속되는 하이라이트 장면. 무대가 움직일까봐, 배우들이 혹여 떨어질까봐 계단을 꽉 잡고있는 전 스태프들의 숨은 고생이 이 무대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다 같이 나와서 같은 안무를 추고, 배우들 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계단을 모든 스태프들이 그걸 다 잡고 계시거든요.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끝나면 다 같이 기뻐하고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해내는 장면이라 의미가 있어요. 이걸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이제 24세. 뮤지컬 업계에서는 창창하다고 말하기도 모자란 나이다. 전예지는 "막 데뷔했을 땐 이런 역할도 하고 싶고 더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다"면서 현재는 조금 달라진 목표를 조심스레 얘기했다. 또 전예지의 '42번가'를 만나봐야만 하는 이유를 꼽으며 막간 작품 홍보도 잊지 않았다.
"처음엔 성취욕에 불탔었죠. 지금은 욕심이 없어졌다기보다 여러 분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동료였으면 해요. 오랫동안 배우로 연기하고 싶거든요. 천천히 오래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역할도 만날 거고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42번가'는 3연째라 안무를 당장 익혀야 하거나 동선이나 내용이 낯선 건 없어서, 그 이상의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전예지의 특별함, 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기대하고 보러 오시길 바라고 있어요.(웃음)"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사진=샘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