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한지상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뉴스핌=양진영 기자] '나폴레옹' 한지상이 끊임없는 도전에 박차를 가할 준비를 마쳤다. 12년간 무대에서 살면서 한 순간도 안주한 적이 없었음에도 이번엔 더 새롭다.
라이선스 뮤지컬 '나폴레옹'에 출연 중인 한지상과 만났다. 아시아 초연작의 부담을 덜려 노력했던 만큼, 만족스러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공연이 잘 올라가고 있음에 감사한다는 말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너무 공을 많이 들였던 작품이어서 지금은 굉장히 즐거워요. 준비 과정에 있어서 쉽지 않은 숙제들이 많았어요. 한국 연출부, 스태프, 배우들이 해결해야하고 다 채워야 했죠. 다른 라이선스에 비해서 험난한 과정들이 있었고, 연출부나 스태프도 몇 번 교체가 있었어요. 그래서 더 배우들이 의기투합헤서 공을 많이 들였고 이렇게 무사히 잘 올라간 것에 감사해요."
'나폴레옹'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워털루 전투를 비롯해 다수 등장하는 전장신.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는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쉽지 않을진대 뮤지컬의 한계는 당연했다. 무대뿐만 아니라 대본에도 인물들간 관계와 사건의 개연성을 연기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뮤지컬 배우 한지상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여러 가지로 아무튼 채워야 했어요. 공간, 시간, 이야기, 구조 모든 게 그랬죠. 그래서 모두가 고생하셨어요. 음악이면 음악, 연출께서 작가님께서 또 배우들이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죠. 채운다는 건 말은 간단하지만 적재적소에 채움은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적절한 동선과 무브먼트를 준비해야 했고 거의 절반의 창작이었다고 봐요. 한국 '나폴레옹' 팀이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의 젊은 시절부터 마지막까지를 연기하면서, 한지상은 시기마다 달라지는 캐릭터 연구에 공을 들였다. 그는 패기 넘치는 젊은 나폴레옹부터 황제가 된 후 갖게 되는 허세와 오만방자함,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격한 감정 기복을 다채롭게 연기해냈다. 그런 한지상에게 가장 와닿는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세상을 떠난 후, 모든 걸 잃은 허무한 존재로서였다.
"힘을 가진 나폴레옹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 패배했을 때, 모든 걸 잃고 초라해졌을 때 어떻게 의외성있게 보여줄 지 고민을 했어요. 힘과 권력에 따른 변화가 잘 보이게끔 표현된 것 같아요. 감정기복이 심한 캐릭터라 힘들기도 했죠. 마지막에 무얼 위해 이렇게 달려왔나, 결국은 조세핀에게 무슨 짓을 했나 싶은. 그 품에 안기고픈 본능적인 갈망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상상 속에서 재회했을 때, 서러울 정도로 반가운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어요. 그 신이 많이 기억에 남고 나폴레옹이 이렇게도 조세핀을 사랑하는구나 싶죠."
뮤지컬 배우 한지상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한지상은 그간에도 비슷한 작품, 장르에 안주한 바가 없었고 이번에도 그럴 예정이다. 뮤지컬 '모래시계' 태수 역을 준비하며 그는 "'괴물' 때와 마찬가지로 의외성있는 태수가 되지 않을까"라고 캐릭터를 살짝 예고했다.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는 최민수 표 태수는 한지상이 넘어야 할 산이기보다 어떤 기준이 된 지 오래. 뮤지컬의 태수는 당연히 다를 터였다.
"그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최고의 태수를 보여준 최민수 선배의 답은 20년 전부터 전설처럼 남아있죠. 저 역시 너무 재밌게 본 작품이고요. 다만 2017년에 바라보는 1980년대, 90년대의 격변기는 95년도에 바라본 것과는 다를 거예요. 우리들이 변했으니까요. 그게 제게 좋은 핑계가 될 거라고도 생각해요. 좋은 선배님의 명연이었고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다만 무대에 올라와서 더 압축 된 태수 캐릭터와 넘버가 추가되고 다른 연출이 맡아서 하신다는 건, 다른 버전의 '모래시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죠."
한지상의 분석과 기대는 분명 틀림이 없을 테지만 '모래시계'가 TV드라마로 흥행한지는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말하자면, 모래시계 세대가 아닌 관객들도 많을 테고, 본격적으로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나 고민이 없을 수는 없었다.
"뮤지컬 '모래시계'에서는 95년 드라마에서 택한 방식보다 더 과감하게 표현되지 않을까 싶어요. 옳고 그름의 잣대라기보다, 사실 최근에도 격변을 겪은 2017년이잖아요. 어느 연령층에서, 어느 지역에서는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린 사회가 이렇게 격변하는 가운데에 이미 존재하죠. 그동안 공연 예술계에서 표현하지 못한 과감한 표현들, 자유롭게 누리고 에너지들도 더 뿜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어떤 사상과 철학이 두드러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민감한 소재와 역사를 다룰 수 있다는 자유를 힘껏 누리고 싶습니다."
뮤지컬 배우 한지상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뮤지컬 업계에서 탄탄한 인지도와 달리, 한지상은 방송이라는 매체에서는 늦깎이인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방송 진출은 제 목표였다"고 본래의 전공을 어필했다. 식당에만 가면 아주머니들이 아들처럼 예뻐해주신다는 말과 함께 그는 여전한 무대 사랑과 자랑도 놓치지 않았다.
"방송 진출 시기가 좀 늦어진 것 뿐이죠. 기회가 좀 늦게 찾아왔다고 생각해요. 전공 공부를 할 때는 뮤지컬이 오히려 번외 장르였어요. 연극영화 전공하면서 누구나 그렇듯 연기자로 갈망과 포부가 있었죠. 뮤지컬이 자연스럽게 먼저 기회가 왔어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말이 더 와닿기는 하죠. 하하. TV로 얻는 인지도와, 뮤지컬에서 10년간 노력해온 평가는 조금 다르긴 해요. 관객들은 누구보다 냉정하게 무대의 퀄리티를 따지시니까요."
스스로를 "부족함이 많은 배우"라고 겸손하게 얘기한 한지상. 이미 12년차 베테랑임에도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야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배우로서 매 무대에서 완벽하고 싶다는, 작지만 결코 쉽지 않은 목표를 오늘도 곱씹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배우예요. 절대적으로 연기가 1순위여야 한다는 선배들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요. 결국 뮤지컬 배우는 편견과 싸워야 하거든요. 노래를 주 업으로 하는 듯한 장르가 편견을 만들죠. 요즘 뮤지컬 배우들이 부각되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결국 종합 점수로 평가받는 거고, 연기가 1순위예요. 모든 걸 완성하는 건 드라마니까요. 노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둘다 잘해야죠. 관객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오시는데 다 바라실 수 있는 거죠. 그걸 늘 충족시켜드리고 싶어요. '모래시계'에서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지금 제 야망은 매 무대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겁니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