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연극은 1년에 꾸준히 한 작품씩은 꼭 하고 싶어요. 제 자신을 환기시키는 작업인데다, 활력소가 되거든요. 지금은 영화에 중점적으로 노력하고 싶어요. 저예산이든 상업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죠. 작품을 계속하면서 제가 가고 싶은 길이 구체화 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제 결을 찾아낼 수 있는 근원지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이야기하는 자세가 유달리 진지했던 배우 서현우(35).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연기에 대한 열정, 연기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영화 '독전' 촬영 중이지만, 최근 연극 '3일간의 비'가 끝나고, 영화 '사라진 밤' 크랭크업으로 겨우 짬이 난 서현우를 만났다.
서현우는 지난 10일 성료한 연극 '3일간의 비'에서 테오와 핍 부자(父子)의 1인 2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3일간의 비'는 미국 유명 건축가 아들 워커가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과거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은 다소 불편한 끝맺음으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 테오와 핍만이 가끔씩 유쾌하게 환기시켜 준다.
"저도 처음에는 마지막 결말에 벙쪘어요. 기존 작품들과 너무 다르니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거든요.(웃음) 하면 할수록 답을 모르겠어서 상황에만 집중하려고 했죠. 또 우리가 해석하는 걸 보여주는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이런 류의 연극을 좋아해요. 불친절하지만 시적인 표현, 함축적인 대사들로 관객들이 나중에 곱씹어서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연극이요."
어려운 과제였지만 잘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연출과 각색을 맡은 배우 오만석의 도움이 있었다. 서현우는 배우가 아닌 연출가 오만석에 대해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서 '트루웨스트' '트루웨스트 리턴즈'에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다만 연출가와 배우, 같은 역할을 한 배우로 만나 함께 무대 위에서 합을 맞춘 적은 없다고.
"배우와 연출을 둘 다 하니 공감을 잘 해주세요. 연출만 하시는 분들과 쓰는 언어도 다르고, 굉장히 시간 절약이 돼요.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보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본인도 감성적으로 이해를 하니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웃음)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아낌없이 수용해주시죠. 또 무조건 배우가 1순위라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이 있어도 배우가 먼저 느껴지는 대로 해보고 동선을 조율해요. 대본 전체를 다 외우고 있어서 상대 배우가 연습 못 나온 날 연습을 맞춰주기도 했어요."
사실 서현우는 '3일간의 비'를 하면서 영화 '사라진 밤'과 '독전' 촬영을 병행했다. 연극이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는 공연이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연극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럼에도 서현우는 "정신력이 강해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다른 작품과 병행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정신력이 강해진 건지 내성이 생긴 건지,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재미있었어요. 하루는 공연을 하고 '독전' 아침 촬영을 하러 갔는데 연극처럼 제스처를 크게 한 거에요. 그랬더니 조진웅 선배님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거냐'고 말해서 다들 웃었어요. 왔다 갔다 하는게 훈련이 된 것 같아요. 무대 연기와 일상적인 연기에 대해서요. 이번 여름은 굉장한 집중 훈련 기간이었던 거죠.(웃음)"
무대와 스크린을 옮겨다니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 서현우는 "공연 전에는 일부러 몸 상태를 올리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영화 촬영 전에는 몸을 풀지 않는다"고 노하우를 밝혔다.
"공연 전에는 일부러 미친듯이 뛰어서 몸 상태를 업 시키려고 많이 노력해요. 무대 위에서는 신체적으로도 긴장의 연속이라 일부러 몸을 많이 풀죠. 영화에서는 반대로 완전히 누르려고 하죠. 일상의 사람들은 무대 위의 사람처럼 상기돼 있지 않으니까요. 발랄한 캐릭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충되어 있지 않아요. 일부러 놀면서 피곤하게 만드는 건 아니지만 몸이 피곤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있죠."
지난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통해 정식 데뷔한 서현우는 연극, 뮤지컬 뿐만 아니라 영화 '고지전' '스파이' '관상' '소원' '용의자' '맨홀' '그놈이다' '무수단' '터널' '죽여주는 여자' '택시운전사' 등 다양한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소화해왔다. 주변 사람들이 '일 중독'이라고 부를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는 "제가 해보고 싶은 작품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닥치는 대로 하진 않지만 제가 해보고 싶은 작품은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캐릭터가 작든 크든 작품 안에서 일말의 고민은 있는지, 드라마가 있는지, 타당성이 있다면 하고 싶어요. 원색적인 역할보다 이런 것들을 통해 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저를 필요로 하는 역할인지, 제가 소화를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죠. 무작정 출연하고 싶다고 나이대가 안 맞거나 제가 못하는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직 상업영화에서는 아직 비중이 크진 않지만, 독립영화에서는 두각을 드러낸 지 오래. 지난 2015년 주연으로 출연한 '병구'가 후쿠오카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올해 '백천'이 칸국제영화제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오는 10월 열리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죄 많은 소녀'(감독 김의석),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감독 이광국)에도 출연했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굉장히 배우고 싶어하는 열정, 작업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하는 기운들이 좋아요. 독립영화 현장에서 주연을 하면서 긴 호흡을 많이 느껴볼 수 있고, 저 자신을 실험해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올해 '죄 많은 소녀'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부국제'에 초청됐는데,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한해가 될 것 같아요."
'평생 배우'를 꿈꾸는 서현우의 작은 바람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 물론 무명을 원하는 것이 아닌 작품마다 다른 이미지로 대중에게 알려지길 원한다는 뜻이다. "동물적인 배우"란 말이 가장 기분 좋다는 그는 여전히 연기하는 게 가장 재밌다고 말한다.
"제 욕심은 작품을 많이 하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거에요.(웃음) 언젠가 좋은 타이밍이 와서 인지도가 생기더라도 타성에 젖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계속 훈련하고 경계하고 있어요. 일상과 연기하는 순간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일 기분 좋은 얘기가 '동물적인 배우'죠. 평소의 훈련으로 연기할 때는 생각 없이 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희열 같은 거요. 학교 다닐 때는 연극 연출도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연기가 훨씬 재밌어요. 앞으로 굉장한 로맨스도 해보고 싶네요.(웃음)"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풍경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