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이혼 후 전세 보증금까지 탈탈 털어 DVD방을 개업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이 다 죽은 상권인지도, DVD방이 10년 전 트랜드인지도. 뭐 결과야 뻔했다. 손님 대신 파리만 날리고 월세와 관리비는 10개월째 밀렸다. 말 그대로 노답인 상황. 그런데 다행히도 그때 기적처럼 매수자가 나타났다. 정말이지 이제 불행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우 신하균(43)이 신작 ‘7호실’로 극장가를 찾았다.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의 망해가는 DVD방 7호실에 각자 생존이 걸린 비밀을 감추게 된 사장과 청년, 꼬여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열혈 생존극을 그린 작품이다.
“일단 메시지도 좋았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답답한 사회를 잘 보여줘서 마음에 들었죠. 그러면서 또 같이 고민해볼 거리를 화두로 던지잖아요. 게다가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했죠. 결과물도 색깔에 맞게 잘 나온 듯해요. 사실 우리가 어떤 장르로 묶기 어려운 영화라 보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언론 시사회도 그렇고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죠.”
극중 신하균이 연기한 건 두식. 문제의 DVD방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장이다. 신하균은 특유의 ‘웃픈’ 연기로 현실에 찌든 중년 남성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렸다.
“감정의 폭이 크고 극단으로 가는 캐릭터라 힘들기도 재밌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런 감정의 폭, 간극이 주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감독님은 최대한 생활 연기, 리얼한 연기를 요구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비록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만, 미워 보이지 않고 관객이 끝까지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로 만드는데 중점을 뒀죠. 다행히 시나리오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캐릭터 분석이 쉬웠어요.”
그는 시나리오 덕이라고 했지만, 두식이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신하균 공이 컸다. 특히 이번에는 그간 잘 볼 수 없었던 신하균 표 애드리브도 선보였다. 예컨대 태정과 비밀을 공유한 후 커피를 담으면서 하는 혼잣말이나 피자를 먹으면서 하는 대화 등이 그렇다.
“사실 제가 애드리브를 별로 안좋아해요.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죠. 근데 이 영화는 캐릭터랑 잘 맞아 떨어졌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보다 조금 더 풍성하고 다양한 표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또 아무래도 촬영 내내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이 상황에서 두식은 이런 말을 뱉지 않을까?’ 싶으면서 저도 모르게 툭툭 나오는 거죠. 연출자의 지시를 듣다가 포인트가 생기기도 하고요.”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야기는 자연스레 영화 속 사회적 메시지로 이어졌다. 여타 영화처럼 뭉클한 위로나 통쾌한 결말은 없지만, ‘7호실’은 현 사회의 그늘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한국 경제의 병폐를 꼬집는다.
“살면서 벼랑 끝에 선 심정을 크게 느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죠. 입버릇처럼 모두 힘들다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또 주변에서도 개업했다가 문 닫는 자영업자도 많이 봐왔고요. 당장 우리 주변의 이야기니까 마음이 아프죠. 우리 영화가 비록 해답은 없을지라도 문제점은 알려주니 이제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거고요.”
생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배우로서 생존 방법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그는 이내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민폐 끼치지 않고 연기 잘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웃음). 또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요. 사실 새로운 걸 찾아서 하기가 쉽진 않아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공동 작업이라 모든 에너지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하죠. 그래서 뭐든 집중해서 노력해야 하는 거고요.”
그의 말처럼 배우의 생존 방법이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면 이미 신하균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지니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는 연기 칭찬에 손사래를 치지만, ‘하균신’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전 작품을 선택하고 많이 걸어요. 그러면서 캐릭터에 대해 계속 생각하죠. 그렇게 어떤 지점을 지나게 되면 마침내 그 인물에 동화되고 추진력이 생겨요. 다만 너무 주관적으로 연기하면 안되니까 연출자와 계속 수위는 조절하죠.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처럼 백지상태로 시작하겠다는 마음이고요. ‘하균신’이요? 그건 그냥 제 영어식 이름인 걸로 정리해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