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통화정책 정상화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북한이 29일 새벽 75일만에 미사일 테스트를 강행, 또 한 차례 군사 도발에 나섰지만 한국 원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통화가 상승 흐름을 보였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테스트를 통해 미국 전역이 공격 사정 거리 이내에 편입됐다고 경고했지만 외환과 주식을 포함해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만원권 지폐 <출처=블룸버그> |
이날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0.7% 오르며 강세를 연출했다. 일정 기간 잠잠했던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점화됐지만 원화는 상승 탄력을 과시했고, 코스피 지수 역시 약보합에서 거래됐다.
아시아 주요 통화 역시 동반 상승, 북한의 움직임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경계감이나 패닉은 엿보기 어려웠다.
대만 달러화가 0.1% 가량 완만하게 올랐고, 필리핀 페소화와 말레이시아 링기트화가 각각 0.2%와 0.5% 선에서 상승했다. 인도 루피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각각 0.1% 내외로 올랐다.
일본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장중 0.5% 가량 하락했지만 이는 최근 달러/엔 환율의 가파른 하락에 따른 기술적인 반등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안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주식시장도 북한의 도발에 강한 저항을 보였다. 코스피 지수가 0.05% 소폭 하락, 지정학적 리스크를 빌미로 한 공격적인 매도는 나타나지 않았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와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가 각각 0.5%와 0.1% 올랐다. 호주 증시도 0.45% 상승했다.
연초와 비교할 때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도 루피화 <사진=블룸버그> |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이 여전히 잠재돼 있지만 투자자들은 이보다 경제 펀더멘털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
특히 외환시장의 트레이더들은 아시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근간으로 베팅하는 움직임이다.
한국은행이 5년만에 첫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밖에 주요국이 미국과 유로존의 행보에 동조를 이루는 상황이다.
스리랑카를 제외하고 2014년 이후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않았던 아시아 지역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저울질, 북한의 탄도미사일의 충격을 약화시켰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투자자들 사이에 지배적인 데다 일부 트레이더들은 지정학적 긴장감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초 이후 아시아 통화의 추이는 이 같은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로이터에 따르면 위기의 진원지인 한국의 원화가 올들어 달러화에 대해 10% 이상 폭등했고, 태국 바트화와 말레이시아 링기트, 대만 달러화가 일제히 8% 이상 뛰었다. 일본 엔화와 싱가포르 달러화, 중국 위안화 등 주요 통화 역시 6% 내외로 상승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엄스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 “한국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북한의 도발에 익숙해졌다”며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핵전쟁 리스크를 실제 금융자산 가격에 반영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GAM의 폴 맥나카라 펀드매니저는 “북한의 공격 사정권인 한국의 원화와 금융자산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라며 “통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금융 자산의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강력한 글로벌 경제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노무라의 비벡 라지팔 채권 전략가 역시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금융시장이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경제 지표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