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부단히 노력했다. 오로지 대본에 집중하고자 휴대전화와 잠시 거리를 뒀다. 필사를 자처하며 지문 하나하나까지 암기했다. 잠시라도 멈칫하는 부분이 생기면 다시 돌아가 외웠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준비했다. “왜”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이 역할이 너무 좋았어요. 정말 잘 하고 싶었어요.”
배우 정려원(36)이 또 하나의 인생캐를 만들었다. KBS2 드라마 ‘마녀의 법정’ 마이듬을 통해서다. 지난달 종영한 이 드라마는 출세를 눈앞에 두고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 에이스 독종마녀 검사 마이듬과 의사 가운 대신 법복을 선택한 초임 검사 여진욱이 여성아동범죄전담부(여아부)에서 들어가 범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법정 추리 수사극이다.
“드라마 끝나고 모처럼 푹 쉬었어요. 잠도 자고 휴대전화 게임도 좀 하고(웃음). 정말 고시원에서 공부한 기분이었거든요. 처음 4부 같은 경우에는 앞뒤 통으로, 지문까지 외웠죠. 자신감을 얻고 싶었고, 그래서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그때는 캐릭터가 제 것이 아닌지라 강제로라도 몸에 붙이려고 이런저런 전략을 많이 썼죠. 게다가 이듬이 대사가 일상에서 쓰는 게 아니잖아요. 시청자들에게 너무 생소하게 들리지 않도록, 그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 했죠.”
작품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작품을 완벽하게 내놓기 위한 노력. 이 둘은 정려원을 배신하지 않았다. ‘마녀의 법정’은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방송 3회 만에 월화드라마 왕좌에 등극, 마지막까지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켰다.
“다들 처음에는 통상적인 사이다 드라마라고 생각했다가 2부 엔딩부터 ‘뭐야?’ 했을 거예요. 이듬이를 할 말 하는 능력 있는 슈퍼히어로로 알았는데 2부 보니 속물인 거죠. 남 약점 다 공개하고. 작가님이 거기부터 반응이 올 거라고 했는데 진짜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이상적이기만 한 사람은 현실에 없잖아요. 이런 과거, 이런 삶을 살았다면 그게 최선의 모습인 거죠.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다고 여겼어요. 또 전체적으로 큰 줄거리 안에 작은 줄거리가 있고, 그 사건들이 완만하게 해결되면서 통쾌함을 줄 거라 믿었죠.”
정려원의 말처럼 마이듬 캐릭터 자체가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었다. 언제나 당당한 마이듬도, 적당히 속물인 현실적인 마이듬도.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은 하는 마이듬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정려원 역시 그랬다고 했다.
“저는 말 톤만 이듬이죠. 그래서 다들 제가 쾌활한 줄 알아요. 근데 실제 성격은 안구 같아요. 하하. 먼지 하나 묻으면 죽는 줄 알죠(웃음). 겁도 많고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타인에게도 조심스럽고요. 근데 이듬이를 만나면서 ‘내 성격이 원래 이랬나?’ 싶을 정도로 변했어요. 어쩌면 제가 몰랐던 성격일 수도 있고요. 동시에 많이 배웠죠. 이제 싫은 건 싫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다만 아직 서툴러서 세게 표현될 때도 있지만, 나쁘지 않은 변화라 생각해요. 또 제가 자기 검열이 심한데 이제 절 더 믿고 스스로 의심을 멈추게 됐죠.”
정려원은 실제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스스로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칭했다. 자신에게 유난히 엄격한 탓에 시간도 나노 단위로 쪼개 쓴다고. 이번 작품을 함께한 윤현민 역시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전 무기력증으로 번질까봐, 그래서 제가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 더 부지런히 움직여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면 삶이 무의미해질까 두려운 거죠. 예전에 한 번 쉰 적이 있는데 이러다 나태해지겠다 싶어서 노력해서 벗어났어요. 밤 10시에 자서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거죠. 그러면 아침이 길어지거든요. 일부러 규칙적인 삶을 사는 거죠. 그래서 사실 예전에는 좀 타이트하게 살았는데 요즘은 딱 그 중간 사이클을 찾은 듯해요. 적당히 자유롭게, 적당히 분주하게(웃음).”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분주해진 그의 다음 일정은 휴가다. ‘마녀의 법정’에서 호흡을 맞춘 동료들, 그리고 언제나 힘이 돼준 소중한 친구들과 따뜻하게 연말을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새해가 밝아오면 영화 ‘게이트’로 다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우선 여아부 식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할 거예요(웃음)! 친구들이랑도 놀 거고요. 그러고 나서 ‘게이트’로 찾아뵐 계획이고요. 아무튼 올 한해 이렇게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 내가 치열하게 싸워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영 들어갈 수 없을까 걱정했던 시기에 ‘마녀의 법정’을 만났거든요. 못해도 잡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또 사랑까지 받게 됐으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 늘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게 제 일이지만, 이제는 좀 자신이 붙었어요. 이제는 제가 저를 믿어도 될 것 같아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키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