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경유(이진욱)의 삶은 고단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 머물 곳도 없어 여자 친구 현지(류현경) 집에 얹혀산다. 그러던 추운 겨울날 황당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그게 헤어짐인 줄도 몰랐다. 그저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를 조심하라기에 알겠노라 답했는데 작별 인사가 됐다
현지와의 이별은 곧 집의 상실.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없다. 겨우 떠올린 곳이 친구 부정(서현우)의 집이다. 대놓고 불편해하지만, 별수 없다. 사정사정해가며 머무른다. 유일한 생계수단은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다. 그냥 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게 그거뿐이라 시작한 일이다. 물론 그마저도 쉽지 않다. 죽는 것만큼 사는 게 고되다.
그 순간에도 하늘은 경유를 외면한다. 가장 초라한 시기 옛 연인 유정(고현정)을 만난다. 그것도 대리기사와 손님으로, 꿈을 접은 남자와 꿈을 이룬 여자로. 애써 웃으며 안부를 나눈다. 억지로라도 웃어 보인 건 그게 마지막이라고 믿어서다. 근데 그날부터 유정에게서 자꾸 연락이 온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황. 흔들린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먹거리가 변변치 않은 오뉴월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난처해진다. 마땅히 대접할 음식은 없고 흐트러진 살림살이를 보이게 되니 손님이 호랑이처럼 두려운 대상으로 느껴진다. 이광국 감독은 이 속담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리고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붙였다.
영화는 호랑이가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뉴스를 베이스로 그 위에 크고 작은 스토리들이 여러 겹 쌓으며 전개된다. 그 에피소드 속 주인공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이다. 경유에게 유정, 대리기사에게 손님, 부정에게 경유…. 모두,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겨울 손님이다.
인물 이상의 상징적 의미도 품고 있다.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삶의 위기를 의미한다. 이 감독은 고된 현실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녹였다. 지나치게 극적 또는 비현실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다. 다소 유치하긴 하나 영화는 격려와 응원을 잊지 않았다. 다시 펜을 잡는 경유를 보여줌으로써 어떤 위기가 닥쳐도 용기 내 마주해보라 말한다. 모든 건 무서운, 그러나 곧 지나쳐갈 손님일 뿐이라고,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내 인생을 살아가라 조언한다.
배우들의 연기, 정확히는 이진욱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이진욱은 절망적인 순간을 버텨내는 경유, 마침내 터져버리는 경유, 그리하여 다시 시작하는 경유의 내면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이진욱의 말대로 그의 재기의 단초가 될 법한 훌륭한 연기다. 오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