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립대학, 적립금 '수천억'..교육환경 '열악'
1000만원 등록금 홍대 미대생, 1평도 공간서 실습
400명 쓰는 재봉틀 33대..줄 서서 차례 기다려야
전문가 "적립금은 안쓰면서 등록금만 인상하려고.."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서울 마포구의 홍익대학교 자율전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 씨는 최근 인문사회관(C동)에 들렸다 건물 벽이 갈라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홍대 후문에서 똑바로 걸어가면 나오는 인문사회관은 46년 된 낡은 건물로, 사범대학과 경제학과 학생들이 주로 수업하는 곳이다.
이 씨는 굵게 금이 간 건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학교가 무너져요. 적립금이 터져 나오나 봐요”라고 썼다. 이 글에는 홍대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한탄하는 댓글이 가득 달렸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문사회학관(C동) 모습 <사진=홍익대 총학생회 '와르르 사진전'> |
홍익대는 70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쌓은 ‘부자’ 대학이다. 그러나 대학이 돈을 모아 적립금 부자가 되는 사이, 투자 받지 못한 학생들의 교육 환경은 가난해졌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캠퍼스에서는 낡고 부실한 건물이 많이 보였다. 건축학과 건물은 페인트가 떨어져 있었고 벽지가 누렇게 변해 보기 흉했다. 때가 낀 석면에 금이 가있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식당 천장에는 균열이 발생해 섬뜩함까지 안겼다. 옛 초등학교 건물인 운동장 옆 제4강의동은 최근에야 보수공사를 마친 듯 진한 페인트 냄새를 풍겼다.
신입생 차재원(20)씨는 “공사를 했는데도 벽이나 천장에서 가루가 떨어진다"며 "전체적으로 건물이 낡았는데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투자 좀 해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조형관 실습실 모습 <사진=박진범 기자> |
◆1평도 채 안 되는 공간서 실습..기자재도 열악
홍익대는 좁은 강의실에 학생들을 몰아넣는 이른바 ‘콩나물 수업’이 유명하다. 섬유미술패션디자인학과(섬디과) 학생들은 서울 캠퍼스 조형관(E동)에서 전공 수업을 받는다. 약 100명의 1학년생이 실습실로 주로 쓰는 E501호는 강의실 수용인원이 54명에 불과하다. 비슷한 인원의 2학년생들이 쓰는 E502호 역시 수용인원이 55명이다.
면적으로 따져보면 학생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E501호는 전체 면적이 91.3㎡이고 E502는 126.6㎡이다. 이를 204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떨어지는 공간은 1.06㎡정도다. 즉 한 학생이 1평(3.3㎡)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실습을 하는 셈이다.
홍익대 섬디과 학생회장 이선빈씨는 “섬유 작업의 경우 대부분의 작품이 크고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며 “3학년이 사용하는 E505호는 작업하기에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학생들이 복도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세미나 모습. 총학생회는 해당 사진을 공개하면서 '난민촌 세미나'라고 이름 지었다. <사진=홍익대 총학생회 '와르르 사진전'> |
실습에 사용되는 마네킹도 실습실을 더욱 비좁게 만드는 원인이다. 섬디과는 실제 44사이즈 여성과 같은 부피의 마네킹을 약 80개 보유하고 있는데 보관 장소가 따로 없어 실습실에 방치돼 있는 판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섬디과는 동일한 수업을 분반해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실습 자재가 부족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400명에 달하는 전 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는 재봉틀은 고작 33대다. 학생들은 과제를 하기 위해 재봉틀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였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과 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율전공학과, 건축학과, 목조형 가구학과, 시각디자인학과, 산업디자인학과도 작업 및 수업 공간 부족으로 학생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홍익대 미대 신입생 A(20)씨는 “조소과는 야외실기장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학교가 실외 천막 몇 개를 쳐놓고 사용하라고 해 학생들이 화를 냈다”고 전했다.
대학 교육환경 평가 중요 지표중 하나인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재학생수 대비 총교육비를 반영한 금액으로 학교가 학생에 투자하는 교육비를 뜻한다. |
◆적립금은 상위권..교육비는 하위권
17일 교육계 및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가장 많은 적립금을 쌓아 둔 대학은 홍익대, 이화여대, 연세대, 수원대, 계명대, 청주대, 동덕여대, 숙명여대, 성균관대 순이다. 모두 적게는 2000억원에서 많게는 70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보유했다.
문제는 이들 대학이 학생들 교육투자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대학알리미 1인당 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적립금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대학 중 이화여대를 제외하고는 수원대, 계명대, 청주대, 동덕여대가 모두 1000만원 초반대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실제 교육환경이 매우 부실했던 홍익대는 최하위권이다.
이들 대학의 1년 등록금이 약 700만원을 웃도는 것을 감안하면 차액이 300만원을 겨우 넘거나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울대가 차액 3619만3000원, 연세대가 1981만3400원인 것을 볼 때 일반대학 내에서도 교육환경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 보인다.
전국 사립대학 적립금 5위인 수원대(3510억원)와 7위 청주대(2500억원)는 교육부로부터 아예 ‘부실대학(D등급)’으로 지정됐다. 수원대 학생들은 비가 새고 난방이 안 되는 강의실 등 열악한 교육환경에 반발, 학교법인을 상대로 등록금 환불 소송을 내기도 했다. 모두 천문학적인 보유금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례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학관 모습 <사진=박진범 기자> |
◆교육환경 좋다는 이화여대도 ‘콩나물 강의’ 여전
전국 사립대학 적립금 2위에 올라있는 이화여대(6736억원)는 대형교양수업이 문제다. 캠퍼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악명 높다"고 지목한 강의는 ‘서양미술의이해’와 ‘신화적상상력과문화’ 등이다.
지난해 9월 졸업한 안모씨는 “현대문화와기독교 같은 수업도 80명의 학생을 비좁은 강의실에 몰아넣었다”며 “의자와 책상도 일체형인데 노트북을 놓으면 공간이 없어 4년 내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일부 건물의 노후화도 문제였다. 이화여대는 정문 근처에 몰린 새 건물과는 달리 후문 쪽에는 낙후된 건물이 많았다. 후문 바로 좌측에 위치한 학관은 1964년 완공된 대표적인 노후화 건물이다.
학관은 지난해 6월 갑자기 물탱크가 터지는 사고가 발생해 2500명의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와 관련해 재학생 B(25)씨는 “학관, 생활관은 예전부터 창문도 잘 안 닫히고 난방이 안 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교육환경에는 대학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립대학의 교육 여건 부실이 계속 지적 되고 있다”면서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못하게 하고 있는 부분은 불만을 계속 제기하면서 적립금을 인출해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be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