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제라도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북일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양측이 대화의 시작점으로 삼는 부분이 너무 상이해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 일본 “납치 문제 해결이 대화의 전제 조건”
일단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천명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회담을 해도 아무 소득 없이 끝나면 오히려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납치 문제 성과가 보증되지 않은 단계에서의 회담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북일정상회담 실현은 납치 문제 해결 전망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우선 6월 초 열릴 예정인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방침이다. 요르단을 방문 중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우선은 북미 회담에서 어떠한 논의가 이루어지는지, 그 후 북한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지를 주시하면서 대응을 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전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회담 이후 기자단에게 “북미 회담의 기회를 살려 납치 문제가 진전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며 납치 문제 해결이 북일 대화의 전제 조건임을 시사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하나인 ‘니카이파’를 이끌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회담을 하지 않으면 아무 진전도 없다. 일본 측에서 대화를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인정한 납치 피해자 12명에 대해 북한은 “8명은 사망. 4명은 입국한 적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납치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납치 문제를 잘못 다루면 정권 운영에 큰 타격이 미칠 것”이라며 “북일 회담은 납치 문제 해결 확약을 받고 나서다”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북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일본”...경제 지원 절실
반면, 북한은 일본과의 대화에서 제재 완화와 대규모 경제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30일 아사히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내부에서는 이미 안전보장은 미국과, 경제는 일본과 주로 협의한다는 전략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른 경제 지원 등을 참고로 북일 국교정상화가 실현되면 100억~200억달러(약 10조~20조원)의 경제 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지난 2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일본이 지금 같은 밉살스러운 행동을 계속하면 평양으로 통하는 길에 스스로 높은 벽을 세우게 될 것”이라며 “세계에서 더욱 고립되고 배척받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대해 30일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시를 표명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변함없이 ‘최대한의 압력’을 주장하고 있는 데 따른 비난”이라고 북한의 의도를 풀이했다.
나아가 “북한이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노선을 추진하면 일본의 경제 지원이 필요하다”며 “북한에게는 일본의 경제 지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이 납치 문제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상 북한의 의도대로 일본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는 “납치 문제에서 일본 국내 여론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가 얻어지지 못하면 북한이 기대하는 경제 지원에 나서는 것은 어렵다”고 전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 교환한 뒤 서로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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