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대해 추락한 국민 신뢰도 되돌리기 어려울 듯
수사 고민 중인 검찰, 독립성 훼손된 사법부와 비슷한 꼴
[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취임 때부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초 불거진 이 의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하고, 파일을 작성 및 관리했다는 소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올초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고위법관 8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법원 내부적으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구축해 조사에 나섰다. 전국법관들이 수차례 모이며 회의도 했다.
조사단은 지난 25일 192쪽 분량의 최종 조사보고서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판사 성향 등을 분석한 문건 존재를 확인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25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18.05.25 yooksa@newspim.com |
동시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입법 과제였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협상 전략을 모색하는 문건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에서 무더기 발견됐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보고서 등이다. 보고서에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관심을 갖는 판결을 조사하고, 판결 방향을 연구한 정황도 포함됐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가르고, 청와대와 협상을 시도한 사실이 일부 드러난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법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행위에 범죄성이 있다, 없다는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사법부가 청와대와 협상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런데도, 조사단은 자체 조사만으로 범죄성이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놨다. 조사단은 수사 기관이 아니다. 자체 조사만으로 범죄성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또 30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추가 고발이 이어지는데도 검찰은 수사를 시작도 못하고 있다.
수사 독립성, 수사 공정성을 그동안 외쳐온 검찰 모습과는 대조되는 꼴이다. 현재로선 검찰도 독립성을 잃은 사법부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전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엄중 수사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법원이 추가 조사를 하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든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난 이상, 법원에 대해 추락한 국민의 신뢰도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추가 조사 등을 검토 중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취임사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이다. / 2017년 9월26일 김명수 제16대 대법원장 취임사中
이제 국민 시선은 검찰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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