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디엠씨 전 경영진, '회사 보관용 CB' 유통시켜 자금 끌어들여
제2, 3의 CB 사기 막기위해 대책 마련해야
[서울=뉴스핌] 이민주 기자 = 중견ㆍ중소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주 이용되는 CB(전환사채. Convertible Bond)를 악용한 신종 사기가 등장해 업계에 주의보가 발령됐다.
해양 플랜트용 크레인을 제조하는 코스닥 상장사 디엠씨(대표 최종표 정경인)는 지난 15일 "김영식, 김영채 전 대표이사와 김성길 디에스중공업 대표를 740억원대의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공시했다. 기업이 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2장의 CB가 동일한 내용으로 발행된다는 현재 관행을 악용한 것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엠씨측에 따르면 이들 3형제는 지난 2016년 10월 디엠씨를 인수한 이후 260억원대의 CB를 발행했다.
CB란 향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으로 소지자는 약정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데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 채권을 해당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식 형제는 현행 CB 발행 관행의 허점을 노렸다. 기업은 CB를 투자자를 상대로 발행하면 향후 이 CB가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원본 대조용 CB를 별도 보관해둔다. 전자를 '발행용 CB'라고 하고, 후자를 '원본 대조용 CB'라고 하는데 양쪽 CB에는 간인(間印. 두 문서에 걸쳐 찍는 도장)이 찍혀 있다. 아파트 매입시에 매도자와 매수자가 동일한 내용의 계약서 2장에 간인을 찍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기업은 '원본 대조용 CB'를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되고 '발행용 CB' 소지자가 상환을 요구하면 이것이 진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발행용 CB'(왼쪽)와 '원본 대조용 CB'의 개념 |
그런데 김영식 형제는 회사에 보관해둬야 할 '원본 대조용 CB'를 외부에 유통시키고, 이를 통해 유치한 자금으로 카테아, 지디 등 다른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했다. 김영식 형제는 원본 대조용 CB를 담보로 개인 자금도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엠씨측은 "발행용 CB 소지자로부터 주식 전환 요청을 받았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본 대조용 CB'가 분실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상식의 허점을 노린 신종 수법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CB를 발행한 기업의 재무 담당자가 악의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제2, 3의 동일한 수법의 사기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며 "현행 CB 발행 관행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 3형제는 이밖에도 자신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디에스중공업의 공장부지를 디엠씨 명의로 500억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공장부지는 은행들에 시세를 초과하는 선순위 담보권이 설정돼 있었다. 디엠씨의 회사 자금 500억원이 고스란히 이들 3형제 소유의 디에스중공업으로 넘어간 것이다.
국내 1위 선박용 크레인 제조 기업이던 디엠씨는 김영식 형제의 사기극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디엠씨는 지난 18일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고, 현재 주식 거래 정지 상태에 있다. 하지만 그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회생의 길을 찾고 있다.
디엠씨의 크레인 제품. 출처 : 디엠씨 홈페이지 |
디엠씨는 2004년 6월 설립돼 2009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6년 '1억불 수출의 탑' 인증을 받았고,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957억원, 영업손실 43억원, 당기순손실 110억원을 기록했다.
hankook6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