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에 따라 고통 다를 것 가정은 고통 밝히는 것 꺼리는 현상으로"
남성 성폭력 전문 기관, 여성 성폭력 피해 심각성 훼손 우려도…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남성 A씨는 신입사원 시절 겪었던 성폭력 경험을 어렵게 털어놨다.
A씨는 “여성 상사가 평소에도 사생활을 묻는 질문을 하곤 했지만 참았다”며 “회식 자리에서 허벅지를 쓰다듬더니 급기야 노래방에서 일방적인 키스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이후로 상사가 관심을 보였지만 반응이 없자 업무상 불이익이 있어 결국 퇴사를 했다”며 “그 때만 해도 밝힐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감수했어야만 했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9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2016년 성폭력 피해자는 총 2만 9357건이다. 그 가운데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2만 6116명이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는 1478명, 성별 표기가 누락 된 건은 1763건이다. 통계에 따르면 남성 성폭력 피해가 전체의 약 19%를 차지하는 셈이 다.
여성 성폭력 피해 못지 않게 남성 성폭력 피해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여성 피해자는 2006년 1만 2403명에서 2016년 2만 6116명으로 10년 사이 약 2.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 성폭력 피해자는 507명에서 1478명으로 약 2.9배 증가했다.
이처럼 남성 성폭력 피해가 늘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한 전문가는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의 통계가 인용한 대검찰청 2017년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총 1478명의 남성 성폭력의 피해자의 연령은 △6세 이하 22명 △12세 이하 127명 △15세 이하 139명 △20세 이하 274명 △30세 이하 451명 △40세 이하 157명 △50세 이하 159명 △60세 이하 97명 △60세 초과 37명 △연령대 미상은 15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에 있어 성별에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정선 인천대 기초연구원 교수는 “실제 상황에서 일어난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간에 대한 폭력의 문제나 범죄로 봐야 한다”며 “피해자의 고통이 성별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고통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의 전화’ 관계자도 “남성이나 여성이나 피해 유형은 비슷하다”며 “회식 자리에서의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 여성 상사 가해 사례가 주로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주로 어떤 고통을 호소할까. ‘한국 남성의 전화’ 관계자는 “직장 내에서 성폭력을 당한 경우, 문제를 제기할 경우 직장을 잃게 될까 가장 많이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성들은 말 한다는 것 자체를 창피하게 생각한다”며 “체면상 신고를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며 통계보다 성폭력 피해가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의 최교수 또한 “남성들이나 여성들이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비슷하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들은 종종 남성 상담원을 찾기도 한다. ‘한국 남성의 전화’ 관계자는 “물론 상담원은 전문가기 때문에 여성 상담원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지만 남성 상담원의 필요성은 느낀다”며 “아무래도 피해자 입장에서 상담을 시작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남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문 기관이 부족하다는 지적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한국 남성의 전화’도 가정 폭력 위주로 상담을 받고 있고 여가부가 긴급피난처로 지정해 운영하는 임시보호시설도 남성은 입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소장은 “제도적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남성 성폭력 피해의 경우 조금씩 각성해가고 의식화 되는 단계”라며 “제도적 형태로 합의되기엔 오히려 여성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별도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있진 않다”며 “특별하게 남성 피해자라고 해서 (상담 등에) 제한을 두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