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비핵화를 정말 이행할 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만연한 가운데 두 명의 전문가들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진심이며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는 세 가지 징후를 제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열린 만찬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 진보성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11일(현지시간) '북한이 비핵화를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제목의 정 H. 박 선임 연구원과 신미국안보센터(CNAS) 객원 연구원 에릭 브루어의 공동 사설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사설에 따르면 이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실제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간 북한이 협상을 질질 끄는 확립적인 패턴을 보여왔고 약속을 깬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이 핵 실험장과 미사일 실험 시설 일부를 폐쇄했지만 이는 역행될 수 있고, 실질적인 영향은 미미하다는 사실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현재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발전 수준을 보면 실험장 해체는 북한에게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소리다.
여기에 북한이 선뜻 비핵화라는 전략적 변화를 단행하기에는 체제보장 등 기준조건이 결여되어 있다고 연구원들은 진단했다. 한 예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 평화 조약의 첫 걸음인 평화 선언이나 주한 미군 감축 또는 철수 등 주요한 양보를 선행한다고 해도 항구적이거나 법적 구속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얽매이지 않은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신임이 있어야 하며 3대째 김 일가에 권력을 쥐어주고 국가의 안보와 번영을 보장시켜준 핵 프로그램이기에 비핵화는 간단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나 이라크 사담 후세인과 같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미국으로부터 받아 내야 한다. 대(對)북 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이 제시한 '리비아 모델'에 북한이 크게 반발한 것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리비아의 통치자였던 카다피는 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미국과 핵폐기 약속을 했지만 결국 반란군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라크 후세인의 경우, 핵 무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9.11 테러 후 대량살상무기 은폐 의혹이 제기돼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비록 북한과 완전히 평행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두 중동 국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략적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완고한(tough)" 협상가인지 "정직한(honest)" 협상가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없이 미국의 "일방적인" 비핵화는 없을 것이라는 완고한 입장인 반면, 미국은 일단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제재 완화를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사설을 기고한 두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완전히 비핵화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설상 그럴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적국인 미국와 역사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더 논리적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에 대한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김 정은 위원장이 행동으로 몸소 보여줘야 하는 때"라고 연구원들은 말한다. 하지만 만약 당장 내일부터 무기 전부를 포기할 의향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없다면 이는 전략적 의도가 바꼈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러한 신호를 미국에게 보내는 것은 최근 몇달 간 쌓아온 그의 국제적 명성과 자원, 투자한 시간을 허투루 날려버리는 위험성을 동반하기에 과감한 행동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많은 것을 포기하는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미국에 비핵화 진정성을 전할 방법은 무엇일까. 박 선임 연구원과 브루어 객원 연구원은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첫째, 북한 지도자가 상황을 질질 끌고 있다는 의혹을 잠식시키기 위해 실무 회담을 꾸려 비핵화 단계가 담긴 시간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개적인 북미정상회담에서가 아닌 실무진 협의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2차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될 전망인 가운데 이보다 전에 실무진 회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회의가 소위 2차 북미정상회담의 "행사 계획 위원회"가 아닌 회의의 성격이 비핵화와 관련 조치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여야 한다.
둘째, 김 위원장이 핵분열물질 생산을 중단함으로서 핵 개발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략이다. 물론, 미국 사찰단이 핵분열물질 생산 중단을 검증해야 하는 절차도 포함해서다. 북한은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도, 미국에 사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이 방법도 역행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사겠지만 핵시설 폐쇄 보다는 더 큰 신뢰를 줄만한 조치다.
셋째,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비핵화의 정의와 북한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비핵화의 중요성에 대한 서술적 묘사를 수정할 수 있다. 지난 몇년 간 김정은 정권은 비핵화 정의를 "한반도"로 폭넓게 상용해왔는데 이를 "북한"으로 국한시키는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에 핵 방패막 역할을 해온 주한미군 철수를 연관짓게 해 북미 관계에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라고 명명한다면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고리를 끊으면서 동시에 미국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킨다. 또한 마냥 "핵 무기를 포기해야 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란 '모 아니면 도' 기조를 강조하기 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북핵과 경제적 번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란 내러티브를 통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신호를 워싱턴에 전달할 수 있다.
북한에 회의적인 두 전문가는 비록 이들 중 어떤 방법도 북한이 외교적인 절차 도중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이 다른 경우보다 더 오래 대화를 고수할 수 있게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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