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조사 결과 드러난 엘리트 체육계 '민낯'
주변에 호소 못하는 현실…상명하복 구조 폐해
영구제명 지켜질 지 의문…현실적 대안 나와야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내 5대 프로스포츠(축구·야구·농구·배구·골프) 성폭력 실태조사가 가히 충격적이다. 문체부가 지난해 5~12월 스포츠계 관계자 8035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남성이 5.8%, 여성은 7배인 37.3%나 됐다. 더욱이 피해를 입고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응답이 무려 69.5%였다.
높은 관람률과 대규모 자본이 오가는 프로스포츠계는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이미 짓물러 있었다. 프로스포츠 내부의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성희롱·성폭력을 은폐하거나 피해자 스스로 묵인하는 장치로 작용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왼쪽부터), 권은희 최고위원, 김삼화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근절 3법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1.25 mironj19@newspim.com |
7개 프로연맹 소속 선수·코칭스태프·직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를 보면, 성희롱·성폭행 가해자는 코칭스태프(35.9%), 다음은 선배 선수(34.4%) 순으로 많았다. 상명하복의 문화가 두드러진 체육계 특유의 시스템이 이런 사태를 빚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성폭력이 가해지는 장소를 보면 충격이 더해진다. 설문 결과 성폭력이 벌어진 장소는 회식자리가 50.2%로 가장 많았다. 선수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훈련장(46.1%)이 뒤를 이었다. 프로선수 사이에 행해지는 성폭력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대담한 지 보여준다.
문체부는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프로스포츠계 성폭력 실태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 대책이 마련되면 이를 반영, 후속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각 프로연맹의 상벌 규정을 개정해 성폭력(강간, 유사강간, 이에 준하는 성폭력, 중대한 성추행) 가해자의 영구제명을 추진하고 성폭력 은폐를 시도한 구단·지도자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을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각 프로 연맹 신고센터와 별도로 '프로스포츠 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가칭)'를 신설하고 전문기관과 연계해 신고 접수부터 민형사 소송까지 성폭력 피해자 상담, 심리치료, 법률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선수와 코칭스태프 등이 의무적으로 수강하는 '윤리교육' 내 성인지 교육을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다만 이와 같은 문체부 대응에도 체육계는 회의적이다. 송강영 동서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엘리트 체육이 출범한지 50~60년이 됐다. 어느날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건 아니고 지켜봐야할 것"이라며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세우고 이를 지속시켜 사회에 안착시키는게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특히 영구제명 등 강력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 교수는 "성폭행 가해자를 영구제명 하겠다는데 대한체육회에서도 이 점이 현재 잘 지켜지고 있지 않아 우려된다. 지난번 심석희 사태만 봐도 대한체육회 회장은 앞과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달랐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체육회는 앞서 영구 제명한 선수를 사면해준 경우도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한체육회도 선별적으로 영구제명된 선수를 사면했다. 이런 일은 반복되선 안된다"며 "지난 정권 스포츠분야에서 유일하게 교육 기능을 담당한 체육인재육성재단의 복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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