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사회 복지

속보

더보기

[마약중독자의 고백⑤] "18살 첫 구속..청춘도 아내도 잃었다"

기사입력 : 2019년04월22일 14:24

최종수정 : 2019년04월22일 14:26

16살 가출 후 만난 동네 형 '필로폰' 권유에 투약했다가 중독
필로폰·대마초 손 대다 18살 첫 구속..아버지가 강제로 정신병원 입원
4번째 구속에 아이들 버려두고 집 나간 아내..후회만 남은 과거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필로폰 투약 혐의로 생애 처음 구속된 그 날. 박형욱(가명)씨는 고작 18살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박 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대대로 지역 유지였고 아버지도 동네에서 손 꼽힐 정도로 돈이 많았다. 화목했던 박 씨의 가정에 금이 간 건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부터였다. 어렴풋한 기억에도 정치에는 돈이 많이 들었고, 그럴수록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은 잦아졌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선거에서 아버지는 낙선했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생계 전선으로 뛰어들었고 야망에 넘치던 아버지는 오로지 술병만 들었다. 박 씨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아버지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통제하려는 아버지와 반항하려는 박 씨는 줄곧 평행선만 달렸다. 박 씨는 16살, 결국 집을 뛰쳐 나왔다.

관광지였던 동네는 밤만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에 휩싸였다. 박 씨에게 밤거리는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박 씨는 가출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 밤거리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유흥가에서 일하던 동네 형들은 그런 박 씨와 친구들에게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을 건네줬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제작한 '마약퇴치의 날' 축하 영상. [캡쳐=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을 처음 접한 건 평소 알고 지내던 형을 통해서다. 나이는 한참 위였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친형처럼 박 씨를 돌봐주고 자신의 집에 함께 살도록 해줬다. 박 씨는 형이 집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다. 그때마다 집 안 구석구석에는 피 묻은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형은 며칠씩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 갈수록 예민해졌고 또 난폭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형은 어느 날, 박 씨에게 필로폰이 든 주사기를 건넸다. 박 씨도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에 투약한 마약은 점점 중독으로 변해갔다. 필로폰뿐만 아니라 대마초에도 손을 댔다. 박 씨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마약을 나눠주고 서로의 팔뚝에 주사를 놓아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 주변에는 온통 마약 중독자뿐이었다.

박 씨에게 처음 마약을 권유했던 형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에 박 씨와 친구들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박 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 마약을 구했고 그만큼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고열 증세가 나타나면서 심하면 정신을 잃기도 했다. 악순환처럼 투약하는 횟수와 양은 점점 늘어났다. 마약을 구할 돈이 없을 때는, 행인들을 붙잡고 돈을 뺏거나 도둑질을 했다. 심지어는 가족들이 없는 틈에 집에 들어가 어머니의 패물을 훔쳐 마약을 사기도 했다.

경찰에 처음 붙잡힌 건 필로폰이 아닌 대마초 때문이었다. 박 씨는 친구와 함께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라는 점이 참작돼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박 씨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박 씨는 가출한 이후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퇴학 처리돼 학교도 갈 수 없는 상태였다. 박 씨는 결국 자신의 둥지인 ‘밤거리’로 다시 나갔다.

박 씨는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동갑내기 친구였고 곧 동거를 시작하며 서로 의지하고 보살폈다. 아내는 호프집 서빙을, 박 씨는 바닷가에서 동네 선배가 하는 일을 거들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사이에도 박 씨는 매일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필로폰을 투약하고 대마초를 피웠다. 어렵게 모은 돈은 모조리 마약을 사는 데 탕진했다. 박 씨는 필로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까지 오게 됐다. 그렇게 박 씨는 18살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구속됐다.

박 씨는 벌금형으로 풀려났지만, 구치소에서 더 많은 마약 전과자들을 사귀게 됐다. 이미 주변에는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었다. 박 씨는 그 중 마약 판매책인 한 선배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다. 박 씨는 필로폰을 얻기 위해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선배에게서 받은 필로폰을 팔아 돈을 만지기도 했다.

처음 필로폰을 건네줬던 동네 형처럼 박 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변해가고 있었다. 성격은 예민해졌고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했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가 또 3일 동안 곯아떨어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아무런 음식도 삼킬 수 없었고 태양에 눈이 부셔 낮에는 바깥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수시로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던 팔뚝에는 항상 멍 자국이 남아있었다. 박 씨는 때로 환청을 듣거나 환시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라는 이상행동도 보였다. 늦은 밤에만 활동했던 박 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로 ‘밤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아내는 그런 박 씨에게 화도 내보고 눈물로 호소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박 씨의 머릿속에는 오직 필로폰과 대마초뿐이었다.

아내는 결국 박 씨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는 박 씨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심각한 금단증상에 시달린 박 씨는 약 기운이 떨어지자 극심한 두통과 발열, 오한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싹 바싹 마르면서 입술 곳곳이 찢어졌다. 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에 사정없이 긁다 보니 몸은 항상 피투성이였다. 때로는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박 씨는 어렵게 퇴원했지만,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건 역시 마약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필로폰을 구할 수 있었고 옛 친구들도 여전히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박 씨는 다시 구속됐지만, 아슬아슬하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날 박 씨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다시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박 씨를 찾겠다며 ‘밤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심한 충격에 뇌가 손상됐고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박 씨가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박 씨도 알아보지 못했다. 거듭되는 수술에 다행히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2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박 씨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단약(마약을 끊는 일)’을 결심하게 된다.

박 씨는 삼촌의 소개로 한 페인트 제조 공장에 취업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잠시, 박 씨는 공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윗사람들과 수시로 싸움을 했다. 전형적인 금단증상이었다. 박 씨는 결국 공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다시 밤거리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의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내는 박 씨가 마약을 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단약에 성공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가장,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박 씨의 생활을 변하지 않았다. 오로지 약을 찾아다니는 생활의 반복이었고 결국 다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마약 중독자인 남편을 대신해 아내는 젖먹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궂은일을 해야만 했다. 박 씨 역시 수감 생활 동안 크게 후회했다. 아내에게도 그리고 아들에게도 죄스러웠다. 박 씨는 반드시 단약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출소 후 박 씨는 평범한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쉽지 않았다. 박 씨는 이미 마약 중독자로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고 별다른 기술조차 없는 상태였다. 결국 박 씨가 선택한 건 다시 ‘마약’이었다.

박 씨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동료를 통해 필로폰을 구했다. 자신이 투약하고, 남은 건 모조리 팔아 돈을 마련했다. 아내로서는 달갑지 않은 생활비였지만, 아들을 위해 필요한 돈이었다. 그 사이 박 씨와 아내는 둘째를 갖게 됐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박 씨는 ‘밤거리’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약의 굴레에 갇힌 박 씨는 끝내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박 씨는 경찰의 수사를 피해 여관을 전전하던 중 가장 친했던 동네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친구는 필로폰을 투약한 후 끔찍한 선택을 했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까지 만나지 못하면서 도주하던 박 씨는 이 사건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앓게 된다.

경찰의 수사가 좁혀오면서 박 씨의 도주극도 끝이 났다. 실형을 선고받은 박 씨는 출소 후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시 마약에 손대고 또 다시 구속된다. 18살 처음 구속된 이후 4번째 구속이었다. 필로폰 투약·알선·소지·판매·대마초 흡연·소지 등 혐의였다.

10년 넘게 박 씨의 곁을 지켰던 아내는 이날 아이들을 버려둔 채 홀로 사라졌다. 교도소에서 이 사실을 접한 박 씨는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거울을 볼 수 없었다. 박 씨는 교도소에서 가족들 생각에 수없이 울음을 삼켰다. 과거에 대한 후회, 아내에 대한 미안함, 아이들 걱정에 박 씨는 스스로와 ‘밤거리’를 원망했다.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제 출소를 기다리는 박 씨의 꿈은 소박하다.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친구들이 가장 부럽다”는 아들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 TV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 칠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위해 동네가 떠들썩한 잔치를 치러주는 일. 끝으로 마약 중독자인 남편의 뒷바라지만 했던 아내의 용서를 구하는 일. 평생을 밤거리에서 마약에 취해 살았던 박 씨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박 씨는 35년간의 마약 중독자 생활을 청산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가족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 박 씨는 마약의 굴레를 벗으려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모델 문가비 아들 친부는 정우성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모델 문가비(35)가 출산한 아들의 친부가 배우 정우성(51)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우성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24일 "문가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아이는 정우성의 친자가 맞다"며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최선의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출산 시점과 두 사람의 교제 여부, 결혼 계획 등 사생활 관련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알렸다.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앞서 두 사람 사이의 득남 소식이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22년 한 모임에서의 만남 가까이 지냈으나 교제한 사이는 아니었고 결혼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6월 문가비가 임신 사실을 알렸고 정우성은 양육의 책임을 약속했다고 한다. 문가비는 뷰티 예능 프로그램 '겟잇뷰티' 등으로 얼굴을 알린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지난 2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들 출산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나 결혼 여부나 아이 아버지에 관한 언급은 없어 궁금증을 샀다. 당시 문가비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소식에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저는 임신의 기쁨이나 축하를 마음껏 누리기보다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조용히 임신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며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건 오로지 태어날 아이를 위함이었다. 마음 한편에 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꽁꽁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사진=문가비 인스타그램] 이어 "세상에 나온 아이를 앞에 두고 여전히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은 엄마지만 그런 내 부족함과는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아이를 보며, 완벽함보다는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건강한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가비는 1989년생으로 2017년 온스타일 예능 '매력티비'와 '겟잇뷰티'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SBS '정글의 법칙'과 KBS '볼빨간 당신' 등 각종 예능에 출연했다. 여러 광고와 헤라서울패션위크 등 패션쇼 무대에도 섰다. jyyang@newspim.com 2024-11-25 09:48
사진
이재명 '위증교사' 1심 김동현 판사 누구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재판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25일 오후 2시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의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김동현 부장판사는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사법연수원을 30기로 수료했다. 김 부장판사는 2004년 광주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법, 서울동부지법, 서울고법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선거·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자리하고 있다. 2024.11.25 leehs@newspim.com 김 부장판사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외에도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FC·백현동 의혹' 사건을 함께 심리하고 있는데, 해당 사건은 기록의 양이 방대하고 쟁점이 복잡해 1심 선고를 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초 이 대표 측은 두 사건을 분리해서 진행할 경우 방어권 보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병합 심리를 요구했으나, 김 부장판사는 두 사건을 병합하지 않고 별도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또 김 부장판사는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특검)의 1심 사건을 맡으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이 사건 범행으로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과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며 "특히 박영수 피고인은 국정농단 규명을 위해 임명된 특별검사로 어느 공직자보다 공정성과 청렴성에서 모범을 보여야함에도 금품을 수수했다"고 질책했다. 박 전 특검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가짜 수산업자 김모 씨에 대해서는 "다수의 공직자에게 긴 시간 금품을 제공한 점, 이종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김 부장판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른바 '스파르타팀'을 꾸려 정부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온라인 여론을 조작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에게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위증교사 혐의는 이 대표의 형사 사건 중 가장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유죄가 확정된 위증교사 사범 195명 중 실형(69명)이나 징역형 집행유예(114명)가 선고된 사례는 94.8%에 이르며 벌금형(12명) 선고 비율은 6.2%에 그쳤다. 이 대표가 만약 위증교사 혐의로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확정받으면 공직선거법 제19조에 따라 피선거권이 박탈돼 형이 실효될 때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4-11-25 11:19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