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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슈+] 불 붙은 한일청구권 협정 논쟁…'강대강' 전면전

기사입력 : 2019년08월03일 08:47

최종수정 : 2019년08월04일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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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청구권 협정' 두고 한일관계 도돌이표
韓 "청구권 협정 당시 전쟁범죄 배상 없었다"
日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마무리"

[서울=뉴스핌] 김현우 기자 = 1965년부터 불거진 한일청구권 논쟁이 55년 만에 다시 한일간의 무역전쟁으로 번졌다.

일본 정부는 2일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국인 '화이트국'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를 명백한 무역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의 결정을 발표하며 “4만666건의 의견 제출 중 찬성이 95%, 반대가 1%였다”며 “이번 수출관리는 안전보장을 위한 것으로 무언가에 대한 대항조치, 보복조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무역보복으로 규정, 사실상 전면전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무슨 이유로 변명하든,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라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임시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2019.08.02 mironj19@newspim.com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일청구권 분쟁

한일청구권 관련 분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대전이 끝난 1951년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과 패전국인 일본은 1951년 9월 8일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는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당 국가와 일본 간의 특별 약정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직후 한국과 일본 정부는 1951년부터 1965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 문제를 논의했다. 6.3운동 등 시민과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협정 등을 강행했다.

당시 한일청구권 협정 전문 1조는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했다.

2조에서는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 협정 2조에 따라 배상이 완료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다. 지난 1997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은 일본 법원에 강제징용 피해보상 및 임금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분위기가 달랐다. 시민단체와 진보단체에서는 꾸준히 전쟁 범죄에 대한 청구권이 남아있다고 지적해왔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위자료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등의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민간 연구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일기본조약 및 한일청구권 협정을 진행할 때 인권을 침탈한 전쟁범죄는 논의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이춘식 강제징용 피해자가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 등 전원합의체에서 승소판결이 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30 kilroy023@newspim.com

◆2005년부터 시작된 개인 청구권 인정 바람…대법원 2018년 확정 판결

정부 차원에서 한일청구권 협정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것은 노무현 정부, 예컨대 참여정부가 처음이었다. 당시 꾸려진 민관공동위원회는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를 공개하며 200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만이 포함돼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법부 분위기도 점차 바뀌었다. 앞서 2005년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1,2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2년 “외교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개인 청구권을 놓고 사법부 판단도 바뀌었다.

결국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고 "신일철주금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에 책임이 없다고 한 일본 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에서 기속력이 없고, 신일철주금이 구 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채무를 승계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별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최종 결론을 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는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했고, 구 일본제철은 적극 협조해 인력을 확충했다”고 밝혔다.

또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명시했다.

한편 대법원이 결론을 낸 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해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라며 "대단히 유감으로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콕 로이터=뉴스핌] 김은빈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좌)과 고노 다로(河野太郎·우) 일본 외무상이 지난 1일 태국 방콕에서 회담을 갖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조치 발동 이후 두 장관이 회담을 가진 건 이날이 처음이다. 2019.08.01

◆日, 전략물자 밀수출 주장했지만 근거 없어…결국 韓 대법원 판결에 경제 규제로 보복

신일철주금은 손해배상을 하지 않았다. 이에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 등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2018년 12월 31일 신일철주금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법원은 1월 신일철주금에 자산압류 통지서를 보내고 1월과 3월 포스코와 신일철주금의 합작회사인 PNR의 주식을 압류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조치를 취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관련 분쟁이 생기면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이것이 어렵다면 양국 정부가 각각 임명하는 중재위원 한 명과 양국이 합의한 제3국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된 중재위가 꾸려지게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1월 외교적 협의, 5월 중재위 설치, 6월에는 제3국 중재위 구성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재위 구성에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대법원 판결에 행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삼권분립 원칙을 어길 수 없다는 의미였다. 

결국 일본은 7월 1일, 한국에 대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을 검토한다며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를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토대로 구축되는데 관계성청에서 검토를 진행한 결과 한일간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됐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에서 관련 수출관리에 대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말한 ‘부적절한 사안’은 핵무기·생화학 무기 제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 밀수출이다. 이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및 조치 현황을 매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적발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적발사례만을 선별해서 공개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여기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불화수소를 밀수출했다는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를 지난달 11일 공개하면서 전략물자 밀수출설은 힘이 빠졌다. 대신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일본 경시청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 등 부정수출 사건 목록을 공개하고 있다. 2019.07.12 leehs@newspim.com

◆강대강 구도로 치달은 한일관계, 청구권 협정 두고 치킨게임 돌입

한일 관계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조치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민간에서부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주일대사관 앞에서 시위에 나섰다. 중소상인·자영업자·슈퍼마켓 등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일본산 제품 판매 중단운동도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2일, 한일 양국 정부의 수출관리 담당자가 일본 도쿄에 위치한 경제산업성 별관에서 실무자 회의를 열었다. 회의장 한 켠에 테이블과 간이의자가 쌓여있는 등 의도적인 홀대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일본 실무자는 논의보다는 일방적 설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차원에서의 외교가 막히자 국회도 방일단을 꾸려 의원외교를 추진했다. 방일단은 애초 자민당 내 '2인자'로 꼽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 등을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을 지난달 31일과 1일 모두 취소했다. 한일의원연맹 차원에서 내놓은 공동입장문 역시 이견만 확인됐다.

2일로 예정된 일본 각의 발표를 앞두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외무장관 회의에서 다시 만났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다면 양국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언급했다. 반면 고노 외무상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청구권 협정을 어기는 등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with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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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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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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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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