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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여야 '러브콜' 받던 김동연, 총선 접고 미시간대 교수로

기사입력 : 2019년11월08일 17:22

최종수정 : 2019년11월08일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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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미국 미시간대로 건너가 정책대학원 교수로 활동
"시야를 밖으로 돌려보자는 생각, 미국서 많은 사람 만날 것"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내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새 인물 수혈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인적쇄신 못지않게 당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알릴 수 있는 '뉴페이스'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 최고의 전략임을 알기 때문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영입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오히려 당 내 강한 쇄신 요구를 받게 된 것도 새 인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이른바 '자기 쪽 사람'이 확실한 여의도에서, 여야 모두에게 러브콜을 받는 인사는 흔치 않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는 모두의 러브콜을 뿌리친 채 최근 미국으로 건너가 모교인 미시간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직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2018.12.03 kilroy023@newspim.com

정치권의 한 인사는 최근 뉴스핌과 만난 자리에서 "김 부총리가 결국 미국으로 갔다. 여야 모두 김 전 부총리 영입에 욕심을 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행을 택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메시지 아니겠나"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 10월 중순 미국으로 떠난 김 전 부총리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여의도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의미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해 경제부총리직을 내려놓은 후 페이스북을 통해 활발하게 자신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미시간대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며 "정책대학원장, LSA 학장 등 대학간부들을 만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저를 초청한 총장과도 만난다. 경제학 교수들과는 국제경제와 한국경제에 대한 대화도 나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에서 주최한 제24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 세계 각국에서 모인 700여명의 해외 한인경제인들을 만났다는 소식도 전했다.

김 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력이 있다. 두 정부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평가받아 각 정당에서 영입 1순위로 꼽혔다.

지난해 말 경제부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정치권에서는 그를 서로 영입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정계를 비롯해 모든 대외적인 활동을 줄이고 지방을 돌며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등 봉사활동에 주력했다.

장하성 현 주중대사보다 먼저 주중대사직을 제안 받고도 거절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라는 요직을 맡은 그가 주중대사직을 수락하면 그 이후부터는 민주당계 유력 정치인사로 떠오르게 된다.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페이스북 2019.11.08 kimsh@newspim.com

정치권에 먼저 진출한 그를 아끼는 기획재정부 선배들도 그의 정계 진출을 말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총리와 가까운 한국당의 한 인사는 "1957년생인 김 전 부총리가 지금 정치권에 들어오면 예순이 넘은 초선(의원)이 되는 셈"이라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초선은 초선일 뿐이다. 장관에 경제부총리까지 한 그가 다시 초선부터 시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전 부총리의 성품으로 볼 때도 정치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거의 한 적이 없을 만큼 소신이 있는 사람인데, 정치권에 와서 만인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달 출국하기 전 미국으로 떠나는 소회를 올렸다.

그는 지난 10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며칠 뒤 미국으로 출국한다. 모교인 미시간대로부터 여러 차례 초청이 있었는데 수락키로 한 것"이라며 "공직 퇴임 10개월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며 보냈다. 모든 도(道)를 다 다녔고 가능하면 도시보다 시골을 갔다.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 사는 다양한 모습에서 전에 잘 몰랐던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야를 밖으로 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혁신경제, 경제·사회의 구조개혁, 새 국제경제질서와 같이 제가 관심 갖고 있는 주제들이 미국에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보자는 생각"이라며 "가을학기 동안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겠다"고 전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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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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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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