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오소연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벌써 세 시즌 연속으로 참여하며 '페기 장인'으로 거듭났다.
오소연은 현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주인공 페기 소여 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깜찍한 외모와 눈을 의심케하는 고난도 탭댄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재능과 매력으로 코로나19로 지친 객석에 희망을 전한다.
"벌써 세 번째 출연이네요. 일단 이렇게나 힘든 작품도 드문데요.(웃음) 동시에 이렇게 또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기는 작품도 없는 것 같아요. 몸은 너무 힘든데 정신적으로 개운해요. 배우들이 이렇게까지 한마음이 돼서 올리는 공연은 처음이었죠. 다들 몸이 힘들어서 누구도 힘들게 할 여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서로 챙겨주지못해 안달이고 선후배, 스태프들도 '42번가'에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죠. 막상 연습하고, 무대 하면서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구나. 왜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지?' 농담을 할 정도였죠. 힘든 기억도 보람찼던 걸로 미화돼서 남기 딱 좋죠. 하하."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샘컴퍼니] 2020.07.23 jyyang@newspim.com |
지난 2017년 처음 참여할 때부터, 2018년, 올해까지. 세번에 걸쳐 페기 소여로 무대에 오르는 오소연은 "처음엔 탭을 배우는 게 너무 고돼서 한번만 하긴 아까울 것 같더라"고 당시의 속내를 털어놨다. 그럼에도 두번이나 다시 돌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바로 이 작품만이 주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처음엔 하도 고되게 탭을 배워서 아깝다는 생각에 여러번 해야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정말로 아까워서 여러번 하게 된 건 아니고요.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배우는 달려와야죠.(웃음) 페기의 선한 영향력에 모두가 끌리는 것 같아요. 우리 작품엔 악역이 없어요. 모두가 신기할 정도로 관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죠. 용서가 쉽고, 정의가 승리하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지는 공간이에요. 그런 에너지가 저를 이끌고, 또 관객들도 찾아오게 해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오소연은 페기를 연기하며 바로 이 '선한 영향력'에 가장 집중했다. 순진할 정도로 순수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과 열정을 가진 소녀의 성공 스토리에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페기 역의 배우가 반드시 갖춰야 할 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실에선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극 안에서라도 페기의 선한 에너지가 잘 보였음 했어요. 도로시와 페기도,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놓여 있잖아요. 도로시는 스폰서를 두고, 비즈니스적으로 노력해서 인위적으로 프리마돈나가 된 케이스죠. 페기는 재능과 열정, 우정을 딛고 모든 사람에게 힘입어서 정석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밟아요. 거짓된 것들을 선한 영향력이 이긴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나눴죠. 사실 페기가 잘해야 이 모든 게 가능해져요.(웃음) 그 드라마가 성립되게 하기 위해 탭 연습에 모든 걸 걸었죠. 페기처럼 모든 걸 순수하게 바라보고도 싶었고요. 도로시도 사실은 페기의 롤모델이잖아요. 이면의 어두움을 보는 게 아니라 도로시의 반짝거리는 부분을 닮고 싶어하는 당돌하고 깜찍한 친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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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초반 페기 소여는 등장과 동시에, 약간은 만화 속 캐릭터처럼 과장된 표정연기로 객석을 사로잡는다. 흑백영화 속 마임을 하는 듯한 특유의 제스처도 돋보인다. 드라마를 책임지는 여주인공인 만큼, 페기의 분량은 절대적인데다, 탭댄스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는 "42번가에 나오는 스탭은 자다가도 할 수 있을 정도"라면서 웃었다.
"처음부터 이미지닝을 많이 했어요. 30년대 미국 정서들을 살리려고요. 요즘의 노멀한 톤과는 굉장히 다를 수 있죠. 나라도, 시대도 다르니까요. 미국 브로드웨이쇼라는 장르를 분명히 잡고 갔죠. 연락받고 2년 만에 탭슈즈를 신고 해봤는데 하나도 안잊었더라고요. 몸에 다 익을 정도로 했었나봐요. 그때보다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걱정됐는데 지금이 발도 더 편해지고 자유자재로 완급조절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순서만 따라가기 바쁠 때랑 어떻게 더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완전히 다르죠. 표현의 여지가 많아져서 더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흥이 많은 편이에요.(웃음) 발레 레슨도 꾸준히 받긴 했어도 전공자들이랑은 비교가 안되죠. 다만 포인트를 잡아서 살리거나, 흉내내는 건 배우니까 연기로 커버할 수 있었죠. 하하."
벌써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국내에 처음 공연된지 2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시대도, 공연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라이선스 공연으로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42번가' 역시 18년도 버전부터 적지 않은 변화를 시도했다. 줄리안 마쉬와 페기 소여의 로맨스가 약해지고, 시대와 맞지 않는 대사와 가사를 과감히 수정했다. 다행히 출연진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훨씬 더 호응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에 '42번가' 영국 버전 영화 상영을 보러갔는데 자막이 예전 그대로였어요. 저도 모르게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죠. 옛날 작품이라는 걸 알고 보더라도 좀 불편할 수 있겠다, 와닿았죠. 더 바꿀 게 많았을 수도 있는데 색깔을 유지할 수 있게끔 적절히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줄리안 마쉬와 키스신도 '이것까지 빼도 되나?' 했었고, 배우들도 의견이 갈렸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죠. 페기한텐 묘한 감정들이거든요. 선생님을 향한 동경과 약간의 애정과 애매모호한, 나도 내 맘을 모르겠는 그런 거요. 보시는 분들께 맡겼었는데, 이제 정말 사수와 제자 관계예요. 하하. 바꾸고 나니 안보이던 장면들이 더 잘 보이고, 빌리와 관계도 돋보이게 됐어요. 지금은 다들 긍정적으로 보고 잘한 일이라 여기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샘컴퍼니] 2020.07.23 jyyang@newspim.com |
특히 코로나19와 맞물려, 어려운 공연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브로드웨이 42번가'가 현재에 더욱 감동적이란 평도 나온다. 오소연 역시 "어쩜 이렇게 시기랑 잘 맞는 대사들이 있는지 정말 와닿더라"면서 '막 내린대! 나 실업자야! 월세 어떡하지!' 하는 대사들이 확확 꽂혔다고 고백했다.
"연습할 때도 어쩜 이렇게 지금 공감되는 대사들이 많나 싶었죠. 매순간 와닿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페기가 처음 길에서 동료들과 춤추는 '고 인 투 유어 댄스' 넘버예요. 그 노래에 페기의 서사가 다 담겨있는 듯 하죠. 시골에서 올라와서 사람들 만나고 용기도 얻고 기량을 뽐내고요. 작품 전반을 압축해놓은 느낌이에요.처음엔 그 신이 너무 떨렸어요. 하하. 첫번째로 페기의 실력을 증명해내는 관문이잖아요. 관객들에게 '저 친구는 정말 잘하는 친구!'란 인상을 딱 드려야 해서 긴장됐죠. 지금은 가장 재밌고 가장 사랑스럽고 기대되는 신이 됐어요."
그동안의 출연작을 곱씹으며, 오소연은 "에너지틱한 작품을 좋아한다"고 취향을 얘기했다.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정도의 힘있는 배우는 아니라면서도, 그는 "제게 맞는 작품이 운명처럼 하나씩 와줬다"면서 그간의 활동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어떻게 배우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다짐을 함께 얘기했다.
"적재적소에 참 좋은 작품들이 감사하고 운좋게도 잘 와줬어요. 다양한 걸 하고자하는 마음은 늘 있었죠. 한정적인 역을 탈피하려고 '보니 앤 클라이드'로 도전했었고, '넥스트 투 노멀' 땐 착 붙는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껴보기도 했어요. 드라마가 짙은 연극도 좋고, 나중엔 모노극도 하면 어떨까요. 작품은 운명처럼 오는 것 같아요. 내 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나씩 만나고 쌓이죠. 일단은 배우로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저는 워라밸 그런 거 없어요. 하하. 나이가 먹고 시간이 갈수록 철학도 필요하고 세계관도 넓어야 하죠. 관객이나 시청자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을 연기로 보여줘야 하니까요. 저를 보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직업이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부러 노력 안해도 괜찮은 사람이 돼야 아무런 필터 없이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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