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인천정유 인수 위해 빌딩 유동화 후 임대
안전한 부동산보다는 미래 유망 사업에 투자 집중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SK그룹의 서린빌딩 '셋방살이'가 길어질 전망이다. 부동산에 거금을 묶어두기보다는 미래 사업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그룹 차원의 전략 때문이다. 업계 예상과 달리 서울 서린동 서린빌딩 사옥 인수시점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린빌딩 운용사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최근 SK서린빌딩 매각을 위해 국내 주요 부동산 운용사 및 컨설팅사를 대상으로 매각 자문사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배포했다. 조만간 자문사 선정을 위한 PT(프레젠테이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SK서린빌딩.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SK그룹은 20년째 이 빌딩을 이용 중이지만 2005년 이후로는 세일즈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사용했다.
이 빌딩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 시절인 1999년 완공됐다. 당시 흩어져 있던 계열사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지어졌다.
지하 7층, 지상 35층 규모로 현재 지주사 SK㈜와 함께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 E&S, SK루브리컨츠 등 여러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최태원 회장의 집무실도 이 곳에 있다.
SK로서는 그룹의 유구한 성공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건물이다.
하지만 SK는 2005년 SK인천석유화학(옛 인천정유)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에 이 빌딩을 4400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2011년부터 SK그룹은 국민연금과 5년 만기 부동산 펀드를 구성해 이 빌딩을 재매입 해 사용 중인데 임대료 및 관리비 등으로 연 360억원 가량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이 부동산 펀드는 '하나랜드칩사모투자신탁 33호'로 SK㈜와 SK이노베이션, SK E&S 등이 지분 65.2%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국민연금이 갖고 있다.
업계에선 SK가 이번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내년 3월 전에 이 빌딩을 완전 인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특히 SK는 이 빌딩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최고 입찰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SK가 인수할 의사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SK에게 매수 권리가 부여된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건설은 우산매수청구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 권리 행사를 포기했지만 SK는 상황이 다르니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SK는 빌딩 매입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동산보다는 혁신적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더욱 높인다는 판단에서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을 성장시킨 SK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너도나도 사옥을 그룹의 자존심으로 여기던 시절, 최태원 SK 회장이 애초에 서린빌딩을 과감히 유동화 한 것도 이런 연유다.
가격도 매력적이지 못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로 나가지 못하면서, 서울 빌딩 가격은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SK로서는 구태여 낮은 수익률의 안전자산에 거금을 묶어둘 이유가 없다.
SK 관계자는 "매번 계약이 갱신될 무렵이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거와 달라진 점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사업이 아닌 부동산에 큰돈을 묶어두는 것이 비효율적이란 논리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