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가 시급한 만큼 전 세계에서 이례적인 속도로 백신이 개발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처럼 빠른 개발이 백신에 대한 불신과 접종 거부 움직임을 확산시켜 백신에 의한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일(현지시간) 심층 보도했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 소개한 캘리포니아 거주 그리어 맥베이 씨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절대 백신 접종 거부자가 아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가 위험할 정도로 빨라 보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 전까지 목표를 달성하려 더욱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신 시험 이미지.[사진=로이터 뉴스핌] 2020.07.02 mj72284@newspim.com |
맥베이 씨는 미국 내에서 늘어나는 이른바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주로 의약품 대신 대체의학을 추종하는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 '백신 접종 거부자'들과는 구별되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 상황을 보면서 두려움과 우려를 갖게 된 사례다.
맥베이 씨는 결국 코로나19 치료제로서 효과가 없다고 판명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사용을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승인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을 가한 것처럼 백신도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그는 또한 2021년까지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대량 양산이 가능한 백신을 확보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제대로 된 임상시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까지 백신 상용화 목표를 이룰 경우 현재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 수세에 몰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처럼 빠른 속도가 오히려 백신 거부 움직임을 확산시킬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런던 위생열대 의학대학원의 하이디 라슨 박사는 "백신 거부 움직임이 점차 주류로 유입되며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동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팬데믹이 지속될수록 백신 안전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5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이 비율은 7월 말이 되자 41%로 떨어졌다. 이는 전문가들이 집단면역 달성에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60~70%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이 설문조사야말로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회의론을 조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그는 "현재 백신 거부 움직임은 정상적이지 않으며, 이는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에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신 거부 움직임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 등 여타 선진국에서도 인구의 절반 가량이 백신 안전성을 우려했고 전 세계에서 백신에 가장 회의적인 국가로 알려진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구의 29%만이 백신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백신에 대한 불신은 단순히 소수의 음모이론 추종자들만이 아니라 고학력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공중보건 전문가인 배리 블룸 교수는 건강 인식이 높은 고학력자들이 즐겨 찾는 고급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즈 매장에서 쇼핑하는 고객들 중 상당수가 백신에 대한 불신을 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거부 움직임은 특히 온라인 정보 전쟁에서 우세해지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공유되는가 하면, 백신 접종 캠페인에 주력하는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뜨렸다는 음모이론까지 돌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백신 개발 선두주자인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 부작용에 따른 피해 책임을 면제받았다는 소식은 오히려 백신 부작용을 은폐하려는 의도라고 오도돼 페이스북 백신 거부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기도 했다.
이들은 이처럼 백신 안전성 공포를 조장할 뿐 아니라 코로나19가 젊은이와 어린이에게는 실제로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하기도 하고 제약 산업과 게이츠 같은 인물에 대한 회의론과 과학 전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발빠르고 현명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은 병원 등 의료기관보다 친숙한 공간에서 백신을 접종하거나 의사들 외에도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백신 캠페인을 펼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건강상의 위험 리스크를 안고 백신을 강제로 접종하게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홍역 등 이미 사라진 것으로 느껴지는 전염병과 달리 코로나19는 현실로 존재하는 만큼 백신 접종을 유도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백신 최종 단계 임상시험에서 수천명의 젊고 건강한 자원자들이 기꺼이 '기니피그'가 되겠다고 자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나 직장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을 뿌리 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맥베이 씨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에서 백신 접종을 해야 수업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한 학기 휴학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 회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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