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책임 놓고 노사 갈등…대법원, 2011년 택배기사 업무 인정
올 들어서만 과로사 5명…택배업체도 업무 경감 노력 강조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택배업계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을 누구의 책임으로 명시할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택배기사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 중인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을 택배사 책임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택배노조가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업계는 회사가 모든 분류작업을 맡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우려하는 상황이다.
분류작업 분담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업계와 노조가 큰 틀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기사 파업에 따른 택배대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택배물류현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 leehs@newspim.com |
◆ 업계 "배달순서 정하는 택배기사가 상차해야 효율적"…대법원 판결도 근거로 제시
20일 업계에 따르면 택배업계와 정부, 노조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는 택배기사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분류업무가 택배회사의 책임이라며 약속한 분류인력을 신속하게 투입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표준계약서에도 분류업무의 책임소재를 명시해야 한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논의된 내용을 기반으로 올 상반기까지 택배기사 표준계약서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업계는 노조가 요구하는 분류업무 책임 명시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서브터미널에서 택배기사 차량에 택배를 싣는 것까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직접 배달하는 택배기사가 배달 순서에 따라 적재해야만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은 서브터미널에 도착한 택배 중 자신이 맡은 지역에 배달할 물품을 싣고 배달을 나간다. 이때 간선차량으로 실어온 물건을 택배기사별로 배분하는 과정이 분류에 해당한다. 택배기사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른 경로로 배송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상차업무는 택배기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분류업무가 택배기사의 업무라고 판단한 법원 판결을 근거로 제시한다. 2011년 대법원은 대리점주가 분류작업에 들어간 비용을 택배회사가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낸 반환소송에서 택배업체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법원은 당시 분류작업에 대한 묵시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발착장에서 한 집배원이 구멍손잡이 소포상자를 택배차량에 싣고 있다. 소포상자 구멍손잡이는 운반편의를 위해 만들었다. 2020.11.23 alwaysame@newspim.com |
◆ 노조, 자동화 안된 한진·롯데 분류인력 투입 촉구…합의 실패시 5500명 파업
회사별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업계는 난처한 분위기다. 업계 1위인 대한통운은 소속 택배기사가 2만2000명에 달하는 반면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각각 5000명 수준이다.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CJ대한통운에 비해 기사별로 담당하는 지역이 넓기 때문에 야간 배송 등 노조가 지적하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분류작업 역시 회사별로 차이가 있다. 서브터미널에서 택배기사가 맡은 지역별로 택배를 분류해야 하는데, CJ대한통운은 이미 자동 분류시설인 휠소터를 모든 서브터미널에 구축한 상태다. 반면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택배기사가 직접 분류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분류인력 1000명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노조는 인력 투입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올 들어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기사 5명이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 기사로, 설 명절 전까지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과로사 사건이 반복될 거라는 게 노조 측 우려다.
업계에서는 분류인력 투입과 자동화 시스템 도입 등 택배기사 근무조건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다만 택배기사들이 물량을 줄여야 과로사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택배업의 성장으로 지역 내 택배물량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택배기사들은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체가 성장하는 만큼 택배기사가 더 늘어나야 하는 만큼 택배기사들의 업무 부담 경감 필요성에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분류업무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표준계약서 명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의기구에서 합의에 실패하면 노조는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오는 27일부터 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파업 인원은 전체 택배기사의 약 11%로 CJ대한통운, 우체국택배,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젠택배 등 5개 택배사 소속 전국 택배 노조원 5500여명이다. 이 가운데 우체국 택배 직원이 약 3000명으로, 일반 택배는 대부분 정상운영이 가능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택배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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