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연길=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2020년 2월 말 코로나19 발생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관광 길이 막힌 지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뉴스핌은 과거 한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관광지였던 옌볜(延邊,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백두산과 혜란강이 내려다 보이는 룽징(龍井, 용정) 일송정 일대, 북한 접경도시인 투먼(圖們)시 투먼대교, 용정시(옛 화룡현) 명동촌 윤동주 생가, 옌지 시내(延吉,연길) 등을 둘러봤다.
6월 25일과 26일 이틀간 백두산 서파와 북파 풍경구에 올라 천지를 본 뒤 27일, 28일 이틀 시간을 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둘러봤다. 26일 저녁 장백산이 속한 안투현에서 버스로 두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중심 도시인 연길 톨게이트로 들어섰다. 톨게이트에는 '연길' 이라는 한글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옌벤 조선족 자치주는 연길시와 투먼시 룽징(용정)시 훈춘시 허룽(和龍)시 둔화시 등 6개시와 안투현 왕칭현 등 2개 현으로 이뤄져 있다. 자치주 인구는 2020년 기준 200여만 명이며 이중 조선족은 약 35%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옛날 북간도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연길은 연변조선족 자치주 주도(州都))와 같은 곳이고 인민로는 베이징의 장안가처럼 연길의 중심도로다. 연길은 마치 서울의 대림동을 연상케 한다. 시내 모든 도로표지판 부터 상점의 상호에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있다.
27일 오후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이곳에 나오니 100주년 경축구호가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인민로 뒷쪽은 부흥가로 상가와 시장이 밀집된 곳이다. 이곳에도 공산당의 12가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과 중국 국기인 오성기, '기업은 당을 따라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나서자' 는 붉은 선전 구호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헝겊 신발(布鞋, 운동화), 발 수리(修脚, 발 미용)'. 같은 한글이지만 남북한 말이 다른 것 처럼 중국 조선족 동포의 말도 너무 다르다. 실제로 중국은 우리 한글(한국어)과 중국 조선족이 쓰는 조선어를 구분하고 있다. 연길시내 곳곳에는 중국공산당의 12가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도 한글로 적혀 있어 생소한 느낌을 갖게 했다.
연길은 한중수교 이후 한동안 한국 무역교류에 따른 수혜로 경제가 번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중국 랴오닝과 지린성, 헤이룽장성 동북 3성 경제가 중국 타 지역에 비해 낙후된 것 처럼 연길시를 포함한 연변조선족 자치주도 상대적으로 경제가 많이 발전하지 못했다.
27일~28일 연길 용정 투먼 일대 상가와 식당, 관광지에서 만난 현지 주민들은 코로나 19 발생으로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고 연변 인구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조선족들이 계속 타지로 떠남에 따라 경제 형편이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파트 가격도 연길이 제곱미터당 7000위안 내외로 베이징의 10분의 1수준이고 용정시는 3000위안 정도였다. 택시는 기본 요금이 5위안이다. 인민로 뒷편 부흥가 시장 통의 샹차이와 마늘 쫑, 가지, 고추, 제철 완두콩 등을 파는 야채 가게에 들러 물어보니 파 한근에 2~3위안이라고 했다.
수교 이후 한국에서 돈을 번 조선족 동포들은 연변 일대에서 노래방과 음식점 다방(찻집) 전자제품 기기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돈을 번 동포들은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칭다오와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국으로 이주해 나갔다. 가족들은 서울 대림동과 베이징, 산동성 칭다오와 광둥성 광저우로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연변 조선족 사회의 해체는 한층 가속화됐다.

인민로 서쪽입구 큰 사거리에서 걸어서 북쪽으로 들어서자 광밍가라는 길 표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오포(OPPO) 비보(VIVO) 등 휴대폰과 각종 전자 디바이스 매장이 길거리를 따라 자리를 잡고 있다. 거리 한가운데에 중관 전자상가라는 타이틀을 단 대형 전자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는 이곳이 서울 용산 전자상가와 같은 곳이라고 일러줬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