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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헌규특파원의 금일중국] 한중수교 29주년, 현지에서 본 중국의 어제와 오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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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한중 수교 일주일 전인 1992년 8월 17일 텐진(天津) 공항. 수교전이라 정규 항공편으로 베이징 수도 공항에 못가고 일주에 한번 왕래하는 김포발 아시아나항공 전세기를 타고 중국 수도 베이징 관문인 이곳에 내려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막 지어진 듯한 텐진 공항은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바뀔 정도로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1992년 여름 수교전 백두산 천지 관광을 위한 여정. 텐진 공항서 해체 직전의 낡은 봉고차를 타고 두시간 쯤 달려 베이징 역에 도착했다. 16년 뒤인 2008년 이 길엔 중국 최초로 고속철이 놓였고 이동시간도 30여분 정도로 단축됐다. 1992년 8월 17일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날 오후 베이징 도심의 베이징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역 광장은 콩나물 시루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익숙치 않은 매케한 향, 숨이 턱 턱 막히는 폭염. 광장의 남성들 절반은 아예 웃통을 벗어제낀 채였다.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해서인지 매표 창구도 대합실도 모두 철망과 함께 셔터 문을 내려놓고 있었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선 이곳에서 먼저 지린(吉林)성 장춘(長春)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지만 표 판매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요령이 있는 조선족 안내원 원 과장 덕분에 표를 구할 수 있었고 한나절 쯤 뒤에 베이징 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열차안에서 그는 베이징시 교통운수국 지인을 통해 표를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동북으로 가는 열차는 한칸이 6개의 침대로 이뤄진 잉워(硬臥, 딱딱한 침대칸)였는데 지저분하기 이를테 없었다.

기자는 우연히 29년 후인 2021년 6월 말 베이징역에서 출발해 똑같은 행선지 백두산 여행에 나섰다. 기차표 구매는 이젠 인터넷 예약후 신분증(여권)만 지참하면 됐고 침대칸은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29년전 스무시간이 넘던 주행시간도 7시간 정도로 단축됐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2021년 6월 24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승객들이 베이징 역 광장을 지나 각자의 행선지로 향하고 있다.  2021.08.24 chk@newspim.com

기차는 다음날 저녁 장춘역에 도착했다. 텐진 공항서 기자를 마중한 조선족 원 과장은 식사를 하자며 장춘 인근 한 화공회사 구내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이 속한 단위(기관, 직장)라고 소개했다. 공장 인근에 넓은 공회당과 함께 큰 마을이 접해있었다.

원 과장은 회사내에서 한국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 그의 주 업무는 한국 기업 자본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중국내든 한국에서든 한국 관계자를 만나는게 그의 주요 임무였다. 그는 외자 유치 건으로 수교전이지만 이미 서울도 수십차례 다녀왔다고 소개했다.

수교전 중국 사회의 '코리안 드림'은 하늘을 찌를 태세였고 그 중심은 한국과 소통이 손쉬운 조선족들의 삶의 터전인 동북지방이었다. 수교전 이미 많은 조선족 보따리상들이 서울로 몰려갔고 장춘과 지린시, 옌변자치주 일대에는 각종 한류가 태풍처럼 불어닥쳤다.

원 과장은 수교전 일찌감치 한류붐이 일면서 과거 동북지방의 조선족과 한족사회에서 꽃파는 처녀나 피바다 등 북한 가극 CD 등이 밀려나고, 대신 대한민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열풍은 2017년 이후 사드로 급랭했고 수교 29년인 2021년 여름 한중 문화교류 현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있다.

이런 가운데 8월 24일 수교 29주년을 맞아 한중관계 미래 발전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나름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측 사회문화 분과의 홍인표 위원은 위원회가 사드와 코로나19의 장애를 뛰어넘어 한중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데 지혜를 모을 것이라고 24일 뉴스핌에 밝혔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수도 베이징의 베이징 역 플랫폼에 지린성 장춘행 열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2021년 6월 24일 뉴스핌 촬영.  2021.08.24 chk@newspim.com

당시 원 과장은 '한국 돈 5000만 원 이라도 좋으니 우리회사에 투자할 수 있게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 이 화공 공장은 직원이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큰 규모의 회사였다.

이런 대형 회사가 5000만 원도 좋다며 투자를 호소하고 나선 것은 그 시절 중국의 달러 수요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이것은 중국이 혈맹 북한의 비위를 거스르며 한국과 수교를 서두른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달러는 중국 개혁개방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쌀 한톨을 아끼듯 중국이 달러 한장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지 기자는 당시 텐진 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길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1992년 8월 24일 오후. 기자는 여름휴가를 이용한 일주간 백두산과 동북 지역 여행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다시 텐진 공항으로 돌아와 탑승을 기다렸다. 하지만 항공편은 무려 4시간이 넘게 연착됐다. 장시간 연착의 이유는 탑승 후에 알게됐다.

석간 기내 신문은 헤드라인으로 한국의 이상옥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장관)과 한중 수교 서명식을 가졌다는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연착 이유는 수교 체결 외교단 특별기 일정때문이었다.

항공편이 연착되는 동안 기자는 새로 지어진 텐진 공항 구석 구석을 돌아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면세점엔 차와 차 도구, 실크 스카프, 백주 등이 진열돼 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당시 중국 여행 때는 달러를 가져가 입국장 환전소 등에서 '위안화 외환 태환권'을 교환해 사용했다.

아직 경제력이 보잘것 없을 때여서 인지 당시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위안화는 지금과 달리 화폐 가치가 그다지 없어보였다. 일주일 간 중국을 다니면서 쓰다 남는 외환 태환권은 달러로 환전해서 와야했는데 외환은행격인 '중국은행'이 창구를 닫아놓고 있었다.

한중 왕래가 잦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달러를 내주지 않겠다는 심산인지 상습적으로 저런다고 들려줬다. 기념품으로 몇장 남기고 할 수 없이 면세점의 조악한 물건들을 몇점 구입해 남은 외환 태환권을 모두 소진해야 했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오히려 넘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해 고민이다. 2021년 7월 말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 2359억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1위로 일본 외환 보유고 두배를 뛰어넘는 규모다. 인기없던 위안화는 세계 각국의 외환준비고중 5위 통화가 됐고 무역 결제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2편에 계속>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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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왕즈이 잡고 말레이오픈 3연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날카로운 공격력까지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년 첫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다. 안세영은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56분 만에 게임 스코어 2-0(21-15, 24-22)으로 물리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0만1500달러(1억3000만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 [사진=BWF]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지난 해 8차례 만나 모두 왕즈이를 제압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호 상대 전적 17승 4패가 됐다. 왕즈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왕중왕전 결승에서 패한 뒤 "안세영은 항상 모든 나라 선수들에게 롤모델"라며 믹스트존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쏟았다. BWF 관계자조차 "왕즈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많았다.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던 세계 3위 한웨이(중국)가 감기 몸살로 기권했고 준결승에서 최대 난적인 세계 4위 천위페이(중국)의 기권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날 경기 전 "안세영은 허점이 거의 없는, 매우 철저하고 완성도 높은 선수"라며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범실을 쏟아내며 1-5까지 밀렸다. 뒤늦게 리듬을 찾은 안세영은 하프 스매싱을 앞세워 득점을 쌓아 10-11로 인터벌에 들어갔다. 휴식 후 특유의 송곳샷이 살아나며 역전했고 셔틀콕을 상대 엔드 라인과 사이드 라인 위에 떨어뜨리며 21-15로 게임을 잡았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2게임에선 짜릿한 뒤집기쇼를 펼쳤다. 9-17까지 밀려 패색이 짙었으나 수비와 길게 가져가는 랠리로 추격에 나섰다. 왕즈이가 20-19로 먼저 게임 포인트에 들어갔지만 안세영이 듀스를 만들고 23-22로 앞선 뒤 대각 스매시로 챔피언십 포인트를 뽑았다. 2026년을 여는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안세영은 환호하는 말에이시아팬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1-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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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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