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이 7년 4개월 만에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시세가 90달러를 넘어선지 일주일여 만이다. 수급 긴축 상황이 지속하는 가운데 투자은행 사이에서는 국제 유가 100달러대 전망이 대세론이 됐다.
인도 뭄바이 주유소 직원이 주유하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월가 IB들 "유가 하반기 100달러 돌파"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WTI 선물(근월물 기준) 가격은 전날 종가보다 2.2% 상승한 90.17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9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4년 10월 이후 7년 4개월 만이다. 이미 지난달 26일 90달러를 넘어선 브렌트유는 이날 1.7% 뛴 91.02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며 잇달아 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산유국의 공급 여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한 데다 수요가 견고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수요량을 전년보다 하루 333만배럴 증가한 9971만배럴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이자 과거 최다 기록인 2019년 9955만배럴을 웃돌 것으로 내다본 셈이다.
이달 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플러스는 3월에도 하루 40만배럴의 증산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그 계획을 놓고 의문이 제기된다. 예로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대립 중인 미국과 유럽이 대러시아 제재를 시행해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에 제동이 걸리면 당장 증산할 수 있는 산유국은 적은 실정이다.
나이지리아 등 일부 OPEC 회원국은 투자 부족과 설비 문제로 산유량이 계획분에 미달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IEA는 OPEC 자료를 인용해 작년 12월 OPEC 플러스 전체 생산량이 목표 대비 하루 90만배럴가량 부족한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12월에는 OPEC플러스에서 좌장 격인 러시아도 생산량 목표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 석유 업계에서는 개발사가 유정 굴착보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을 우선하고 있는 까닭에 증산 속도가 더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코로나19 사태 전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내년이 돼야 가능할 것으로 봤다. 미국 역시 투자 감소에 따른 생산 여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 등 유력 투자은행은 유가 100달러 돌파 전망을 하고 있다. 당장의 수급난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재고량은 감소하는 가운데 이른바 '탈탄소화' 추세의 장기적 역풍이 계속된다는 전망에서다. IEA에 따르면 작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원유 재고는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모간스탠리의 마틴 라츠 수석 원자재 전략가가 이끄는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를 내고 ▲적은 재고 ▲적은 예비생산 여력 ▲저조한 투자 등 이른바 '삼저(三低, triple deficit)' 요인에 의해 하반기 중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하반기 브렌트유 100달러대를 전망했다. 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100달러대를 기록한 것은 2014년 9월이 마지막이다.
오스트리아 빈 OPEC 본부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지구촌 인플레 연쇄 우려
유가가 100달러대로 치솟으면 지구촌의 인플레이션 압박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 상승이 식품과 서비스 가격을 끌어올리면 소비자의 지갑 사정은 더욱 악화하고 이것이 임금 상승 요구로 이어지는 '연쇄효과'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이런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 압박은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행보를 재촉해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이미 연쇄효과의 나타나고 있다. 현재 경제가 완전고용 상태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미국은 작년 12월 시간당 평균 임금이 전년동기 대비 4.7% 증가했다. 일자리 창출 건수가 최다를 경신한 영국에서는 에너지값 급등 영향 완화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검토되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럴은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하면 임금 인상 요구를 부추기는 완고한 인플레 환경이 조성된다"고 봤다.
100달러 도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시각도 있다. JP모간은 "2010~2015년에도 WTI 가격은 평균 100달러를 넘어섰다"며 "당시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와 주식시장은 잘 버텼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가 130달러나 150달러가 돼도 경제와 증시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역사적으로 유가가 세계 경제에 문제가 된 경우는 에너지 비용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8%를 초과했을 때(2008년이 마지막)"라며 "하지만 현재 에너지 비용의 비중은 5.6%인데 임계치에 도달하려면 에너지 비용의 비중이 60% 증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건설 노동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