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비 하루에만 24조원 이상 추산
손발 묶인 러 중앙은행, 루블화 폭락 저지 한계
2008년 금융위기 맞먹는 경기 위축...'국가부도' 경고도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일주일 넘게 지속되는 러시아의 공격에도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해 우크라 전역에서 공세를 강화하며 투항을 압박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로 인한 자금 출혈로 결국은 러시아 경제가 먼저 백기를 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 에너지 및 경제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유럽이 지금과 같은 강도 높은 제재 카드를 꺼내지 못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도 6000억달러(약 725조5800억원) 넘게 쌓아둔 외환보유고로 외부 충격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기업이나 신흥재벌은 물론,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까지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러시아 국가부도 임박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각료들과 회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putnik/Aleksey Nikolskyi/Kremlin via REUTERS 2022.02.28 wonjc6@newspim.com |
◆ 군비 지출 하루에만 24조원 이상
유럽 컨설팅업계 온라인 플랫폼인 컨설턴시닷EU(Consultancy.eu)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군에 일일 200억달러(약 24조186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경제회복센터(Centre for Economic Recovery)와 컨설팅업체 치비타(Civitta), 이지비즈니스(EasyBusiness)는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번 우크라이나전으로 러시아 경제가 이미 상당한 자금 출혈(bleeding money)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 장비 및 인명 피해 등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 손실은 침공 첫 5일 동안 80억달러(약 9조6744억원) 정도에 달한다. 이 중 인명피해만으로 러시아가 앞으로 수 년 간 입게 될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27억달러(약 3조2651억원) 정도다.
여기에 교전이 장기화하면 무기, 연료, 미사일 공격 등의 군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러시아의 일일 군사 비용이 2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다.
[키이우 로이터= 뉴스핌] 주옥함 기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 한 장갑차량이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2022.03.03.wodemaya@newspim.com |
◆ 루블 방어력 잃은 러 중앙은행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을 감안해 유럽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란 푸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차단시켰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 접근을 제한하는 핵폭탄급 제재를 들고 나왔다.
지난달 28일에는 미 재무부가 러시아 중앙은행, 국부펀드, 재무부와의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제재를 실행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크라 침공 이후 루블화 가치가 자유낙하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의 손발이 묶인 점이 가장 큰 충격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주말 서방의 금융제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월요일 루블화 가치가 30% 폭락하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9.5%였던 기준금리를 20%대로 대폭 인상하는 한편, 국내 수출 기업들에게 루블화 즉각 매입을 주문했다.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강도 높은 제재로 중앙은행의 루블화 방어에 한계가 오면서 러시아 경제는 당장 루블화 폭락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뱅크런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루블화 급락세도 멈추지 않고 있다. 3일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는 장중 10% 이상 하락한 달러당 118.35루블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새로 썼다. 루블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장중 사상 처음으로 유로당 125루블을 돌파(루블 가치 약세)했다.
브루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일련의 제재 조치들은 러시아 경제 붕괴를 초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러시아 루블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 'GDP 35% 위축·국가부도' 등 전망 암울
러시아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시장에서는 러시아 국가 부도 사태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3일 러시아의 달러화 표시 장기국채와 루블화 표시 국채의 신용등급을 각각 'BB+', 'BBB-'에서 'CCC-'로 일제히 강등했다. 'CCC-'는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 임박 상태를 뜻한다.
S&P는 가용 외환보유액이 제재로 인해 반토막난 점을 지적하면서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전날에는 피치가 러시아 신용등급을 종전의 'BBB'에서 정크 수준인 'B'로 두 계단 강등했고,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러시아를 '부정적 관찰 대상(rating watch negative)'에 올렸다.
무디스는 지난주 성명에서 추가 제재가 러시아 신용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러시아를 등급 검토대상에 올리기로 한 상태다.
투자은행(IB)들의 암울한 전망치도 잇따르고 있다.
JP모간은 제재로 인해 당장 이번 2분기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35% 축소되고, 올 한해 기준으로는 7%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지난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당시 6.8% 경기 위축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7.5% 감소 등에 맞먹는 충격이다.
우크라 침공 전 올해 러시아 경제가 2.5%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던 캐피탈이코노믹스는 제재로 인한 불확실성 고조로 올해 러시아 GDP가 5%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올 여름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1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뉴욕포스트는 올해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장부상 자산 규모가 이미 830억달러(약 100조3885억원) 감소했고,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생한 손실이라고 전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러시아 억만장자는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루코일을 이끌고 있는 바기트 알렉페로프 회장으로, 올해 들어 자산 규모가 130억달러(약 15조7183억원) 이상 증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경지대에서 훈련중인 러시아군 탱크. [사진=로이터 뉴스핌] |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