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호황기 지나 거품 꺼지자 '고평가' 논란
"눈높이 낮추고 시장 친화적 가격 내놔야"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잔치는 끝났다." 요즘 얼어붙은 IPO(기업공개) 시장을 보며 나오는 얘기다. 현금과 투심이 모이던 지난해와 달리 투자자들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대외적 변수가 커지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경계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김준희 금융증권부 기자 |
흥행 기대감이 높던 대형 공모주들도 줄줄이 투자 심리전에서 밀려났다. 1월 말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SK쉴더스와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이 상장을 철회했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하면서다.
철회 사유는 이렇다. "회사의 적절한 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한다." 즉 인플레이션 우려와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위축된 투자 환경이 수요예측 참패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투자 환경이 변한 것은 맞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메타버스, NFT(대체불가능한토큰) 등이 스치기만 해도 투자금이 뚝딱 떨어졌다. 이커머스 시장 호황에 컬리, 오아시스 등 새벽배송 업체도 지난해만 각각 2차례, 3차례 투자를 유치하며 몸값을 올렸다.
올해는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곡소리가 난다. 투자유치가 지난해처럼 쉽지 않다고들 한다. 유망했던 프롭테크 업체는 인건비부터 줄이고 있고, 기업을 상장시켜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VC(벤처캐피탈)들도 IPO 경색에 일정이 밀린다고 난색이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사들이 3000억~4000억원 밸류를 쉽게 부르던 호시절이 지나갔다"며 "상장사 주가도 빠지는 상황이라 애매한 벤처기업은 투자받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IPO 시장의 급랭도 결국 '고평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동성이 넘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비상장 투자도 옥석 가리기에 한창이다. 반면 이미 힘껏 몸값과 눈높이를 높인 비상장 기업들은 올해 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IPO 시장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시장 부진은 원인은 대외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기업이 별로이거나 비싼 것"이라며 "수중에 돈이 많으면 가격표를 안 보고도 살 수 있지만 지금은 공모주여도 가격을 따지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가 지금 공모주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고평가' 딱지가 붙었던 SK쉴더스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원스토어는 시장에서 원한 가격이 3년 전 FI(재무적투자자)들의 투자금보다 낮아 상장 계획을 미뤘다. 일각에서는 자본시장이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분석한다.
공모주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꼽혔다. 공모 흥행을 위해 적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니다. 기업이 생각하는 기업가치와 시장이 평가하는 적정가격의 갭이 커지며 애당초 비싼 기업에는 투자자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더 이상 장밋빛 전망을 내놓을 때가 아니라 기업들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업계 관계자들 말에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는 요즘이다. 좋은 기업 주식을 할인가에 살 수 있는 공모주 시장이 다시 열리길 기대한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