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에 이은 또 다른 전염병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서부와 중부의 풍토병인 원숭이두창이 비(非)풍토병 지역에서도 전례없이 확산하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원숭이두창은 지난 5월 6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첫 사례가 보고된 이래 40개국에서 누적 2680건(20일 기준)이 보고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숭이두창이 전파력이 강하지 않고, 아직은 폭발적인 유행으로 번지지 않고 있어 코로나19 발병 초기 때와 같은 경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확진자의 대다수가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MSM)이라는 점에서 '나와 관계가 없다'는 인식이 강한 듯 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사태 발생 초기에는 원숭이두창이 코로나19와 달리 공기 중 감염이 드물고 확진자와 밀접 접촉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제2의 팬데믹'은 없다고 안심시켰는데 이제 그 분위기가 엄중하다.
최원진 국제부 기자 |
지난 14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제 이례적인 확산 상황임은 명백해졌다. 바이러스가 이전과 달리 특이한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목소리 톤을 바꿨다.
통상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의 체액, 점막병변과 직간접 접촉 혹은 비말로 전파된다. 공기 중 미세 에어로졸을 통한 공기전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단일 감염경로로 입증할 근거가 부족해 그동안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여겨졌다.
만약 공기 중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지금쯤 원숭이두창 확산세는 진정 국면에 들어갔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그동안 공기 중 감염인지 밀접접촉 사례인지 구분할 만큼 사례가 많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을 뿐, 에어로졸을 통한 공기전파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에도 원숭이두창 감염자가 유입됐다. 지난 20일 공항 검역서 발견한 의사환자(의심자) 2명 중 한 명인 독일에서 귀국한 내국인 A씨가 원숭이두창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여기서 검역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다. A씨는 귀국 후 스스로 질병관리청에 의심 신고를 해 의사환자로 분류된 사례다. 또 다른 의사환자인 외국인 B씨의 경우 증상이 있었지만 입국시 건강상태설문에서 '증상없음'으로 표기했고, 다음날에야 병원을 찾았다. 하루 동안 대인 접촉을 했다는 것이다.
B씨의 경우 PCR 검사서 음성이 나왔지만 만약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 국내 집단 발병 위험이 커졌을 터이다.
원숭이두창은 코로나19보다 전파력은 약할지 몰라도 치명률은 3~6%대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잠복기만 3주여서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의 격리의무 기간은 통상 21일이다.
단순 밀접 접촉 말고도 확진자의 수포성 피부 발진을 만지거나, 확진자가 입은 옷과 사용한 침구류에 닿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확진자 비말이 아닌 피부 병변에서 나온 진물이 증발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바이러스가 공중에 떠다닐 가능성도 제기한다.
만약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공기 중 전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면 새로운 방역규제가 불가피한 상황. WHO는 23일 원숭이두창을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로 선포할지를 검토한다.
WHO가 원숭이두창을 PHEIC로 선포하고 난 뒤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늑장대응이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때 입국제한과 백신 확보 등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은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두가 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유행병으로 번질 때까지 약 2~3개월 걸렸다. 원숭이두창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다. 지금이 초기 방역 골든타임이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