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연휴 남과 달리 당일만 휴무
탈북민들 대북송금 막혀 발 동동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주민들은 올해 추석을 그 어느 때 보다 힘겹게 맞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통제가 강화 된데다 장마당 물가마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11호 태풍 힌남노까지 덮쳐 어수선한 분위기라는 게 탈북민과 대북매체의 전언이다.
북한은 추석 차례(茶禮)가 없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2007년판)은 '차례'에 대해 '명절이나 음력 초하루, 보름에 지내던 간단한 제사'라고 설명한다. 과거의 풍습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북한 주민들이 추석을 맞아 성묘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2022.09.08 yjlee@newspim.com |
차례가 없는 대신 성묘는 허용된다. 평양과 지방도시의 경우 추석 성묘를 위한 차량이 배치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물론 차량 배치가 부족하다보니 평양 근교의 묘지가 몰린 곳엔 일시적인 교통체증도 생기고 이를 피해 꽤 먼거리를 걸어서 성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탈북민 소식지인 '동포사랑' 최근호는 "평양의 경우 낙랑구역 오봉산에 산소가 모여 있다"며 "추석날 아침이면 오봉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고 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오봉산에 더 이상 자리가 없어져 납골당이 생겼다고 한다.
성묘 때는 빈부격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부유층의 경우 문어와 털게・순대 같이 북한에서 고급스럽게 생각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휴대용 오디오를 준비해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나 음성을 후손들이 모여 함께 듣기도 한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북한의 코로나 비상방역 선전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2022.09.05 yjlee@newspim.com |
제삿상에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한에선 동태전과 구운 조기로 상차림을 하는데, 북에서는 임연수나 가자미처럼 평소 구하기 힘든 생선을 통으로 구워놓는다는 것이다.
밤과 대추, 곶감은 남한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경우 삶은 달걀을 홀수로 올려놓는 집도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우리가 추석 연휴인 것과 달리 북한은 당일만 쉰다. 물론 올해의 경우 추석이 토요일이라 자연스레 일요일까지 이틀을 쉬게 된다. 매주 토요일 하게 돼있는 생활총화(직장이나 인민반별로 하는 주간 반성 시간)는 월요일인 9월 12일 치르도록 북한 당국이 조치했다고 한다.
올 추석의 경우 코로나 방역으로 이동이 깐깐해졌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귀띔이다. 지난달 10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지만 북한 당국은 방역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매체인 데일리NK는 8일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추석을 앞두고 주민들이 지켜야 할 방역 규정들을 조직적으로 포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지지통신=뉴스핌]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 모인 북한 주민. |
북한 당국이 추석 당일 주민들이 지켜야 할 코로나 방역수칙을 하달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묘 차원에서 산에서 대가족이 음식을 나눠먹는 건 허용하지만 "귀가 후 대대적으로 먹자판을 조성하지 말고 그대로 각자 단출하게 집에서 휴식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추석을 맞아 고향의 부모나 형제, 친지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한 방도를 백방으로 찾고 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한다.
자유북한방송은 "국경이 막혀 브로커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수수료도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돈을 보내 봐도 절반도 가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북한 내 통제도 강해졌고, 중국 측의 단속도 심하다는 얘기다.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추석 명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착취 계급들이 통치권을 강화하는데 악용하고 종교적 외피를 씌워 허례허식을 덧붙였다"는 이유였다. 김일성은 1967년 5월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추석을 공식 명절에에 아예 빼버렸다.
하지만 남한에서 추석을 계기로 재일 조총련을 비롯한 해외동포 성묘 사업을 시작해 붐이 일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1988년 추석을 부활시켰다.
북한 인공기와 철조망. [사진=로이터 뉴스핌] |
북한에서는 추석이나 설 명절보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과 김정일이 출생한 2월16일이 더 큰 '명절'이다. 김일성의 경우 '태양절'이라 불리고 김정일의 경우 '광명성절'이란 별칭을 붙인다.
북한은 민속명절 외에 김일성・김정일 생일과 ▲국제노동자절(메이데이, 5.1) ▲해방기념일(8.15) ▲정권 창건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 등을 모두 명절로 칭하는데 통상 '사회주의 7대 명절'로 부른다.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가장 성대히 기념한다.
민족 전래의 풍습과 전통보다는 김일성 3대 세습체제의 그늘이 추석명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