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방사능, 회원국 유입시 美·나토 개입 불가피"
"푸틴, 핵무기 쓰면 맞대응...통제불능 국면" 경고음
러 권력 공백에 옛 소련국들 불안...미국은 영향력 행사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불과 수일 안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을 말살시킬 수 있다. 러시아군의 종말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핵전쟁 전문가이자 국가안보 분석가 조셉 시린시온이 3일(현지시간) 야후뉴스 팟캐스트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어코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과 나토가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다.
같은 날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 인물은 또 있다. 아프간 주둔 미 사령관과 나토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을) 가정한다면 우리는 우크라와 크림반도 내에 있는 확인 가능한 모든 전장의 러시아 병력과 흑해의 러군 함대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나토 집단을 이끌 것"이라고 발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2.09.30 kckim100@newspim.com |
러시아가 우크라를 침공한지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전쟁의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동부 영토 일부를 수복하자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두 곳(도네츠크·루한스크)과 동남부 헤르손, 자포리자주(州) 합병을 추진했고 현재 러 의회 승인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다. 러시아의 점령지 강제 병합 추진 속에도 우크라군은 루한스크주로 향하는 관문 도시 리만을 탈환한 데 이어 남부 헤르손주 전선에서도 러군 보급로 차단을 목전에 두고 있다.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결국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국제 사회가 걱정어린 시선으로 상황을 주시하는 가운데 두 전문가의 발언의 파급력은 크다. 그동안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사적 지원에만 나섰을 뿐 전쟁에 직접 개입은 피했다.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전쟁은 나토 대 러시아로 3차 세계대전이 될 소지가 크다.
◆ 나토 핵우산 발동시 러시아와 전면전 가능성
미국 정보 당국이 추산하는 러시아의 전술핵 탄두는 약 2000기로 세계 최다로 알려져있다. 미국은 유럽 나토 동맹지에 약 100개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있지만 미배치 핵탄두를 합하면 이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며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의 것과 합산하면 그 규모는 러시아와 비등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페트라우스 전 CIA 국장은 우크라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어서 나토 헌장 제5조 집단 방어 조약 의무가 없지만 "핵무기 방사능이 나토 국가로 확산할 수 있어 이는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나토 헌장 제5조가 핵우산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린시온 분석가는 러시아가 한 국가를 파괴할 급의 전략적 핵무기가 아닌 전장에서 우크라군 기지나 함대를 조준 타격할 전술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미국과 나토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핵전쟁 특성상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개되고 양측 모두 통제권을 잃을 가능성이 큰 도박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한쪽에서 핵무기의 길을 택하기 시작한다면 상대편 입장에서 핵 말고 다른 좋은 대응책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핵 카드 사용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마치 포커 게임에서 손에 든 패가 좋지 않은데도 폴드를 망설이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먼저 폴드할 때까지 베팅을 하거나 콜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비유했다.
러시아가 2014년에 강제 병합한 우크라 크림반도 동북부 잔코이 지역 마을에서 폭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2.08.16 [사진=로이터 뉴스핌] |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당장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없고, 전술핵을 사용하지는 않아도 블러핑(bluffing·허풍)용으로 강제 병합한 우크라 동부에 배치만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혹시나 모를 푸틴 대통령의 잘못된 선택에 대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리는 CNN방송에 "미국은 현재 여러 잠재적인 시나리오에 따른 긴급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각 시나리오에 따라 미국과 파트너들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논의되고 있는데 그중에는 푸틴 대통령이 전술핵무기 배치만하고 사용하지 않을시 미국도 배치만 하는 '핵 디스플레이'(nuclear display)로 맞대응하는 옵션이 검토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 "우리는 이미 8년째 3차 세계대전 중"
피오나 힐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은 3차 세계대전이 현재 진행형이며 시작점은 러시아가 우크라를 침공한 지난 2월 24일이 아닌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부터 서방과 러시아 간 전쟁이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힐 전 고문은 지난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에서 유럽연합(EU)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요구로 시작된 대규모 시민 시위인 '예우로마이단(유로마이단) 혁명' 때 미국이 우크라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보여준 것이 전쟁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 수백만명의 우크라 시민이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EU 가입 반대와 부정부패, 경제난 등에 불만을 갖고 수도 키이우 마이단 광장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이 현장을 방문, 야당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대를 표명했다.
에우로마이단 시위가 야누코비치 정권 축출 및 친서방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자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해에는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힐 고문은 지금의 3차 세계대전은 "오래 목격해온 것이지만 단지 서방이 이를 인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전쟁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급격히 악화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푸틴 대통령의 의도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역시 우리의 행동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니콜 파신얀 아르메니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2.09.18 [사진=로이터 뉴스핌] |
3차 세계대전이 일촉즉발의 상황일 수 있다는 경고음 속 유럽의 안보지형에도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러시아가 우크라 전쟁에 모든 역량을 쏟아붇고 있는 사이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최근 교전이 한 예이다.
두 국가는 지난 1991년과 2020년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전쟁을 치렀다. 이 지역은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영토이지만 인구는 아르메니아 민족이 다수여서 분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2020년 11월 러시아의 중개로 양국은 종전 평화 협정에 서명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주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가입국이어서 러시아의 보호를 받지만 최근 우크라 전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한 탓인지 지난달 13~14일 양국 국경서 교전이 발생해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15일 양국은 휴전 협정을 맺어 교전은 멈춘 상태다.
러시아의 권력 공백(power vacuum)을 기회로 삼은 듯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지난달 18일 미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를 찾았다. 이번 교전을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사이의 투쟁으로 규정, 아르메니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러-우크라 전쟁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 지역 국가들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간 영향력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불안정한 옛 소련 국가들의 안보 정세도 또 다른 세계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하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