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도시, '상시적' PCR 검사 폐지
지도부 발언도 '위드 코로나' 전환 시사
완화 미진할 경우 백지 시위 재확산 가능성도
[서울=뉴스핌] 홍우리 기자 = 중국을 넘어 홍콩과 대만으로까지 확산했던 '백지 시위'가 일단락되는 듯한 분위기다.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 영향도 있지만 중국 다수 지방 정부가 방역 수위를 대폭 완화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백지 시위가 중국의 위드 코로나 전환을 촉진하면서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경제활동 자유'가 또 다시 침해받게 되면 더 큰 규모의 시위가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각 지방정부, 방역 수위 대폭 완화
중국인들의 일상 생활을 제약해 온 방역 조치들이 완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확산했던 백지 시위가 중국의 '위드 코로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4일 중국 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지난 2~4일 베이징과 톈진, 충칭, 상하이 4개 직할시 외에 스자좡·광저우·쿤밍·난닝·하얼빈·정저우·우한·지난·난창·항저우 등 10개 성도(省都·성 정부 소재지), 선전 등 일부 대도시들이 시민 외출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각 지역 방역 완화 조치의 공통사항이다.
베이징은 5일부터 PCR 검사 결과 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간 폐쇄했던 일부 대형 쇼핑몰 영업도 재개한다고 밝혔다. 다만 식당 내 식사는 여전히 금지되고 직장인 재택근무와 초·중·고등학생 수업도 여전히 온라인으로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시 당국은 앞서 지난달 말 고령의 노인과 영유아·온라인 수업을 하는 학생 등 외출 수요가 없는 주민들은 PCR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었다.
지난달 26~27일 시위가 일어났던 상하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원 등 야외 공공장소 입장 시 PCR 음성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산둥성 당국도 5일 0시부터 조정된 방역 정책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공원이나 관광지 등 공공장소에 입장하거나 지하철·버스·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PCR 음성 증명서를 제시하지도 않아도 되고,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고열·기침·항바이러스·항생제 등 '4대 약품'을 구매할 때 필요했던 음성 증명서 및 실명등록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항저우 역시 "상시화 PCR 검사는 하지 않고 원하는 경우에만 검사할 것"이라며 "양로원·복지원·초중교·유치원 등 특수 장소를 제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출입 시에는 더 이상 PCR 음성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 로이터=뉴스핌] 이나영 인턴기자= 2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방호복으로 무장한 방역관이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아파트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2022.12.02 nylee54@newspim.com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비공개 발언도 위드 코로나 전환에 힘을 실어준다.
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이 1일 베이징에서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과의 회담 당시 '백지 시위'를 언급했다면서 "시위의 원인은 중국 인민이 3년간의 전염병 사태에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위의 주요 참가자는 학생과 젊은이"라고 말한 것을 전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EU 관료들은 중국이 더 많은 방역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음을 느꼈다"며 특히 중국에서 확산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가 코로나19 기존 변이보다 덜 치명적인 점을 언급한 것은 봉쇄 조치 완화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시 주석의 이러한 발언 내용은 중국과 EU측 공식 발표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방역 완화 움직임을 고려할 때 중국 지도부가 사실상 제로 코로나 종식 수순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방역 책임자인 쑨춘란 부총리가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위생건강위원회와 가진 좌담회 관련 보도문에 '제로 코로나(動態淸零)' 관련 표현이 빠진 것도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쑨 부총리가 제로 코로나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중국이 방역 정책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것이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 백지 시위 '소강'..."한 목소리 내면 바뀐다" 확인
지난달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했다. 화재 피해가 전해진 직후 SNS를 중심으로 방역을 위해 설치된 봉쇄용 시설물이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것이 이른바 '백지 시위'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고강도 봉쇄와 유전자증폭(PCR) 검사 등에 지쳐있던 상황에서 봉쇄가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 속에 누구나 '제로 코로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결국 중국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시위대는 검열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흰 종이(백지)'를 들었다.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본토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시위에 해외 주요 도시도 동참했다. 홍콩에서는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소규모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며 중국 내륙의 반 제로 코로나 시위에 연대했고, 대만에서도 연대 시위가 있었다. 런던과 파리,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중국 백지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집회가 잇따랐다.
하지만 당초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장기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었다.
정부나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는 고강도 방역에 대한 반대가 이번 시위의 '핵심 요구'였다는 점, 시위가 대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규모화·조직화 할 수 있는 지도세력이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영수를 원하지 않고 투표를 원한다" "노예가 되지 않고 시민이 돼야 한다"는 등 다소 자극 적인 구호를 외치긴 했지만 시위 세력 전체의 목소리로 간주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뉴욕 로이터=뉴스핌] 이나영 인턴기자= 2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미국 주뉴욕 중국영사관 인근에서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규제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우산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2022.11.29 nylee54@newspim.com |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도 시위대의 열기를 꺼뜨리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달 28일 중앙정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법에 따라 적대 세력의 침투 및 파괴 활동과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 및 범죄 행위를 결연히 단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대 세력'은 사실상 시위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시위에 강경 대응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4일 대만 중앙통신사는 백지 시위가 일어난 후 각 대도시 경찰이 경비 상태에 돌입하면서 시위 재개를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경우 지난 2일부터 현재까지 량마차오·쓰후이차오·톈안먼(천안문) 광장·올림픽체육공원 등에 대규모 경찰력이 배치돼 있다며, 이들은 수시로 시민의 신분증 검사 등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장쩌민 전 주석의 추모 열기도 시위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 전 주석의 추도대회가 6일로 예정된 가운데 전국적 애도 기간에 시위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기 부담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방역 완화 추가 조치가 미진하고 경제활동 자유가 여전히 침해받고 있다고 느낄 경우 시위가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보복'에 숨죽여 있던 중국인들이 최근의 시위와 방역 조치 완화 움직임을 지켜보며 '행동하니 달라진다'라는 인식을 갖게 됐을 수 있다. 또한 다수가 현정책이나 정부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점이 확인됐다는 점에서도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 잇따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hongwoori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