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하락세·SVB 충격 따른 우려 확대
美 첨단산업 규제·중국 맞불 대응 예상
공급망 등 산업정책 취약점 보완 절실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한국 산업에 '레드 코드'가 번지고 있다. 예고된 수출 하락에 투자 충격, 첨단산업에 대한 글로벌 규제까지 겹치면서 이를 극복할 해답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모습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발 금융 충격에 미국 정부가 급한 불은 껐다지만 실질적인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지적도 들린다.
◆ K-산업 활성화에 총력 집중되나 현실은 '첩첩산중'
지난해 사상 최대규모의 수출 규모를 기록했지만 무역적자도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 4분기께부터 수출 실적이 꺾이면서 올해부터는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수출은 지난달까지 5개월째 감소세를 나타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3년 2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수출은 전년 대비 7.5% 감소한 501억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이달에도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다.
지난 13일 관세청이 내놓은 이달 1~10일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수출은 158억 달러를 나타내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6.2%(30억5000만달러) 감소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달에도 수출 감소세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에 국제 시장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파산 소식 속에서 미국 뉴욕증시만 보더라도 13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가 동반 하락했다. 그나마 나스닥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또 다른 지역 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뉴욕증시는 혼조세를 보였다.
SVB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국내에서도 우려의 시선은 마찬가지다. 이미 국민연금이 SVB의 모회사 SVB 그룹에 투자해 306억원 가량이 물린 상태다. 여기에 위탁투자 등 간접투자까지 포함하면 3800억원 규모까지 늘어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가 투자한 글로벌 펀드의 운영사 4곳의 자금 역시 100만달러 이상 SVB에 묶인 상태다.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지만 미국 경제의 불황 '시그널'의 연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 사태에 대해 "현 단계에서의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금융시장 안정 유지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주시하며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게 추 부총리의 답변이기도 하다.
다만 재계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 시장의 불황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지라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크다"며 "자금이 묶이고 뱅크런이 생기게 되면 산업에 투입되는 자본이 굳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은행권을 넘어 어떤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 IRA·반도체 지원법으로 옥조이는 미국·단체관광 제외하며 주시하는 중국
이런 상황에서 국내 첨단기술 분야는 글로벌 규제 속에서 제대로 기지개를 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시장을 견인할 기업을 꼽히지만 미국 수출에서만은 아직은 활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개정안이 여전히 미 의회에서 계류된 상태여서 그나마 선회한 수출 방안이 친환경차 상업용 리스 차량이다. 테슬라가 전기차 조립방식을 혁신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현대차는 보조금 지원없이는 판매단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반도체 관련 화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여기에 미국은 우리나라의 반도체 경쟁력을 흡수하고 자국 국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반도체법 보조금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시설 투자 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나 내민 조건은 초과수익 시 보조금 환수, 기업 정보 공유 등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보조금 지급 기준과 관련 한국기업에 대한 영향이 우려스럽다"며 "이번 지원기준은 불확실성을 키울 뿐더러 국내 기업의 경영 및 기술 침해, 미국에 대한 투자 매력 하락 등이 예상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미국과의 협상 시 국내 기업에 대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다.
산업분야 한 연구원은 "IRA나 반도체법 등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어쩔 수 없는 대책이어서 법의 기본틀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세부적으로 기업과 미국 정부간 협상을 통해 계약을 하는 개념인데, 한국 기업이 수혜를 얻기는 힘든 구조"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ICT 분야에서 초거대AI 등 트랜드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첨단산업부터 길이 막혀있는 모습"이라며 "다른 분야로까지 이같은 제재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좌)와 중국의 오성홍기. 2021.01.21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런 상황에서 중국도 대응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문화관광부는 자국민의 단체여행 허용 국가 40곳을 발표했으나 한국은 제외됐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강화 조치를 꺼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알고 있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민간경제연구기관 한 연구원은 "산업·외교 지형에서 최근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는 만큼 중국 역시 한국의 취약점을 공략할 것"이라며 "역시나 공급망 자체가 또다시 우려가 되는 만큼 공급망 분야에 대한 현재 정책의 사각지대가 없는지를 따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