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은 올해쉽고,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연극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을 두루 선보인다.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은 뉴스핌과 인터뷰를 통해 올해 서울시극단 라인업의 의미와 격변하는 시대에 문화예술인이 대처하는 자세를 이야기했다.
◆ 직접 고른 '세종시즌' 라인업…"연극 본래의 재미·행복감을 관객들에게"
고선웅 단장은 지난해 9월 임명 이후 2023 세종시즌으로 공연 팬들과 만난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그는, '귀토',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홍도', '칼로 막베스', 뮤지컬 '광주', 최근작 '회란기' 등 연극과 창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연극계에서는 그의 서울시극단 행을 두고 다소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16 hwang@newspim.com |
"그동안은 제 작품에만 관심이 많았어요. 근래에 연극이 본래의 재미와 오락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참여자들의 행복 같은 것들이 줄어든 것 같아요. 지원금에 경도되기도 하고 자의적인 주제에만 천착하는 작품들도 많아졌죠. 물론 창의적 접근도 있지만 연극으로 굳이 다뤄야하나 하는 작품도 있고요. 코로나까지 덮치면서 공연계가 본래의 가치를 잃어가는 듯 했죠. 연극의 재미, 행복감, 만족감 같은 것을 얼른 되찾아야겠다는 위기의식이 조금 있었어요. 관성적으로 굳어진 것도 있고 세대간 갈등도 심해졌죠. 서로 친밀한 상태에서 소통하면서 진화하는 연극의 요소들이 줄어들지 않았나. 시극단은 민간보다는 안정적인 재원도 있고 무대도 있으니 더 웰메이드 작품을 할 수 있겠다, 스탠다드하면서도 대중성 갖춘 연극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어 지원을 하게 됐어요."
고선웅 단장이 올해 선보이는 2023 세종시즌 라인업은 연극을 사랑하는 공연팬들의 취향을 이미 저격했다. 우종희 연출의 '키스'로 시작해 총 5개 작품을 선보인다. '겟팅아웃' '카르멘'은 직접 연출한다. 하반기엔 '굿닥터'와 '콜렉터'의 예술감독으로 고전 연극의 맛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반전의 묘미 등도 함께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여긴 공공극단이고, 개인적인 작업에 매진한다기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시류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여러 눈길과 목소리가 존재하는 단체죠. 연극도 보편적인 작품이 있고 창의적이거나 실험적인 것도 있지만 전자의 것, 좀 더 여가선용적인 작품이 시극단에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전적이면서도 그 이야기 자체가 여전히 울림을 갖고 있는 작품들, 동시대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창작극은 올해 세팅을 못했는데 조금 조심스러웠습니다. 일단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작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맡길 것인가를 짧은 기간 동안에 판단하는데 부담이 있었어요. 24년부터는 창작극도 올려볼 생각입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16 hwang@newspim.com |
우종희 연출의 '겟팅아웃'은 반전이 주는 묘미를 고스란히 살린 극이다. 1막에서 대본으로만 해석하고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행간을 깨닫고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2014년 독일 초연작이지만 전쟁을 소재로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과도 맞닿아있다. '겟팅아웃'은 한 사람의 실수와 범죄를 법적 처분을 달게 받은 후에도 끊임없이 배제하고 배척하는, 역시 현재의 SNS 여론재판과 꼭 닮은 장면들을 무대에 펼쳐낸다. 원작 소설과 오페라로 유명한 '카르멘'도 연극으로 올린다. 도덕과 무도덕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집착을 멜로치정극으로 다룰 예정이다.
"극단 생활을 오래 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분석적이고 시비를 가리려고 해요. 연극을 하다보면 옳고 그름을 얘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누가 뭘 훔쳤다면 뺨을 때릴 수 있지만, 오히려 빵을 사줄 수도 있는 거예요. 하다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공황을 경험하게 되는데 연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고수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더 편하기는 합니다. 제 엄마, 아버지, 친구가 얘기하는 것처럼 찰싹 붙는 표현이 있죠. 창극을 보면 신명과 한이 느껴져요. 그럴 때 심장이 뜨거워지고 통쾌해지는 느낌을 분명히 받아요. 너무 이지적으로 접근하고 머리를 쓰면 피곤해요. 머리로 하는 연극, 가슴으로 하는 연극, 배로 하는 연극이 있다면 저는 배로 하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요. 가슴은 식기 마련이고 머리는 계속 굴려야 해요. 하지만 배로 따라가면 뒷심이 장난 아니죠."
작년부터 제작극장으로 거듭난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극단의 역할도 조금 더 중요해졌다. 순수예술장르 중 가장 대중과 접점을 지닌 선두주자로서 고선웅 단장은 공공극장의 쓰임에 맞는 쉽고 감동적인 작품을 선보이겠단 각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시극단이 제작극장으로 거듭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에요. 없는 일을 발생시키는 일이니까요. 작품 하나 올리면 끝이 아니라 세트나 미술, 극장 운영, 배우와 창작자들의 퀄리티가 계속 유지돼야 하고 예산도 많이 들죠. 대관을 해주는 극장과는 완전히 달라요. 궁극적으로는 서울시극단의 고정 레파토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거기는 이런 작품이 있고 보면 재밌어, 감동이 있어, 편해, 안복잡해' 하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게 하고 싶습니다. 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시극단의 연극은 웬만큼 괜찮아'하고 실망하지 않으실 작품을요. 공공극장의 역할에 충실해서 쉽게 접근 가능하고 사람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 고선웅 단장 약력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한국일본 신춘문예 희곡 당선(1999) ▲(前)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회식 총연출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現)서울시극단 단장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