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서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지옥편' 개최
단테의 '신곡' 바탕으로 한 3부작 전시
비윤리적 모호함에 대한 고찰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리만머핀은 태미 응우옌(39)의 첫 번째 갤러리 전시이자 한국 첫 개인전인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지옥편'을 23일부터 5월6일까지 개최한다.
태미 응우옌은 2012년 독일 베를린 제12회 현대미술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으면서 '핫한 젊은 작가'로 통하고 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미국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은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 공공 도서관(2022), 일본 도쿄의 니치도 현대미술관(2022), 그룹전은 베트남 호치민 더 팩토리 현대미술센터의 'Nha', 뉴욕 브롱크스 미술관, 중국 베이징 인사이드-아웃 박물관 등에서 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고 2007년 쿠퍼 유니언에서 학사, 2013년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태미 응우옌 [사진=리만머핀] 2023.03.27 89hklee@newspim.com |
회화, 종이 작업, 아티스트 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기독교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작가 단테(1265~1321)의 신곡(神曲)을 기반으로 한다. 전시는 서울에서 지옥편을, 내년 리만머핀 런던에서는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연옥편', 2025년 리만머핀 뉴욕에서의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천국편'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또한 올해 미국 보스턴 현대미술관의 첫 미술관 개인전에서도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기획 전시의 시발점은 작가가 우연히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전문가가 '단테'를 언급하면서다. 앞서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 십자가의 길 등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기독교 회화에 관심이 많은 태미 응우옌에게 단테의 '신곡'과 관련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신곡'은 작가 단테가 본인을 주인공으로 고대 시인이자 철학자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의 9개 고리를 지나 연옥, 천국을 통과해 구원받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베르길리우스는 9개의 지옥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의 1옥에 떨어진 인물이자 사후세계의 안내자이며 신으로부터 단테를 구해라는 미션을 받은 단테의 영적 여행 동행자다. '신곡'은 예수가 나타나기 이전 시대를 산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베르길리우스 등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야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모호함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전시장 전경 [사진=리만머핀] 2023.03.27 89hklee@newspim.com |
응우옌의 작품 'My Guide and I'(2023)에 등장하는 녹색 초목과 뱀의 무리를 등지고 나타난 두 인물이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다. 이들의 인물 묘사는 이탈리아 조각상을 참고했다. 작품 속 배경은 따뜻한 주홍빛과 분홍빛이다. 두 인물이 지옥을 통과하는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여명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장에서는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영적 순례와 함께 냉전 시대 정치의 쟁점인 우주 경쟁을 연결한 작업을 볼 수 있다. 응우옌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이야기와 우주선 이미지를 캔버스 한 폭에 담아 윤리적 혼란을 야기하는 지점을 극대화한다.
도덕적 계몽을 갈망하는 단테,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를 구축한 소련과 미국이 우주를 선점하기 위한 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고찰이다. 이 둘은 서구 세계관을 형성하는 역사적 서사이며 '윤리적 모호함'을 함께 안고 있다.
신이 출연하기 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죄를 지은 것으로 보고 지옥에 가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냉전체제에서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인류의 기술을 급격하게 발전시켰으면서도 전쟁 발발과 환경 문제 등 무한 경쟁을 야기 점은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전시장 전경 [사진=리만머핀] 2023.03.27 89hklee@newspim.com |
응우옌은 "우주로의 상승은 지옥으로의 하강과 동일한 것으로 묘사된다"고 말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거쳐 천국으로 가는 방향은 아래로 하강이고, 강대국의 우주 정복을 위한 로켓과 미사일의 방향은 상승이다. 방향만 다를뿐 결국 도달하려는 지점은 똑같다.
베트남 부모님 아래 미국에서 자란 미국 국적의 응우옌은 베트남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 독자를 위해 발간한 신문 '성조기'를 알게됐고 헤드라인 기사 중 '우주로 간 전우들 영웅으로 착륙하다' '미국은 달에서도 러시아에 승리한다'와 같은 기사를 접하면서 '우주경쟁'을 알게됐다. 이에 그의 그림에도 '성조기'로부터 영감받은 것을 표현하고 '성조기' 로고를 바탕에 배치하기도 했다. 'From Nation to Nation and Race to Race'(2023)에서 미국 성조기는 마치 감금된 듯 우주선 그릴 안에 둘러싸인 동시에 배치도 전체에 걸쳐지며 우주선을 집어삼키려고 위협한다.
리만머핀은 1996년 라쉘 리만과 데이비더 머핀에 의해 뉴욕에 설립해 전 세계 다양한 현대 미술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뉴욕, 홍콩, 서울에 이어 2020년 런던에 네 번째 거점을 마련하고 미국, 대만,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시즌별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