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송혁씨, 미국 입양·파양 후 2016년 추방돼 소송
법원 "강제추방으로 고통…홀트, 1억 배상해야"
"홀트측 보호의무 위반으로 시민권 취득 못해"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40여년 전 호적에 기아(고아)로 편제돼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파양 후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에게 입양알선기관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정부가 입양기관에 대한 감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국가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신송혁(46·미국명 아담 크랩서) 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홀트가 신씨에게 1억원을 지급하고 소송비용도 홀트가 부담하라고 했다. 다만 정부가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단,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pangbin@newspim.com |
신씨는 세 살이던 지난 1979년 3월 8일 홀트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으나 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다 두 번의 파양을 겪고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2016년 11월 17일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법원에 따르면 신씨의 생모는 1978년 9월 신씨를 A영아원에 입소시켰고 A영아원 원장은 해외입양이민승낙서에 신씨를 무적아(고아)로 기재했다. 이후 홀트는 신씨에 대한 기아발견 보고를 하고 홀트 회장은 신씨의 후견인으로 지정됐다.
신씨에 대한 국외입양 절차는 대리입양 방식을 통해 진행됐다. 대리입양은 양부모가 될 자가 입국해 아동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국외에서 대리인(입양알선기관)을 통해 입양을 진행하는 방식을 말하며 당시 정부는 입양특례법을 통해 대리입양 제도를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신씨는 자신이 겪어온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2019년 1월 홀트와 국가를 상대로 2억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가가 2억원이 넘으면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 배당되기 때문이다.
그는 홀트가 자신이 고아가 아니고 본래 이름이 '신성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구청장에게 허위의 기아발견 보고를 하면서 '신송혁'으로 바꿔 무적자로 취적하고 일가를 창립했다고 했다.
또 후견인으로서의 보호의무, 입양가정에 대한 조사의무, 사후관리의무, 국적취득 확인 및 조치의무 등을 위반하고 국외입양을 통해 부당한 재정적 이득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홀트가 신씨에 대한 후견인으로서의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국적취득 확인의무도 위반했다고 판단,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홀트가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해 양부모에게 시민권 취득 절차를 적시에 이행하도록 주지시키고 입양 완료 후 국적취득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했더라면 원고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강제추방 되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원고는 배우자 및 자녀들과 더 이상 미국에서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됐고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상실한 원고가 겪을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클 것임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홀트 측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원고의 손해는 원고가 2016년 11월 17일 한국으로 강제추방되기 전까지는 잠재적·부동적 상태에 있었다가 강제추방으로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고 이때부터 민법상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홀트의 보호의무 위반 사실을 면밀히 조사하고 제재조치에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대응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국가 소속 공무원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홀트에 대한 감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씨의 소송을 대리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소속 김수정 변호사는 이날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홀트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법원이 홀트의 불법행위를 주도하고 용인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는 심각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해외 입양인이 불법 입양에 대한 국가 책임을 주장한 최초의 사례로 알려졌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