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제3자 변제안' 발표하자 뒤늦게 위임장 제출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11일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 17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 7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 변론기일을 지정했는데 피고 측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재판이 계속 연기됐다. 그러다 항소장이 접수된 지 약 2년만인 이날에야 첫 변론기일이 열리게 됐다.
이날 재판부는 "법리적 주장은 차차 하더라도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원고들이 각 회사에서 노역했다는 증거를 다시 한번 정리해서 제출해달라. 피고 측도 정치 상황이 많이 변한만큼 원고들이 피고 회사에서 근무했던 자료를 찾아서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미쓰비시중공업 로고 |
기본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에 끌려간 피해자들이 강제징용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 측에 피해자들의 근무 자료를 확인해달라는 석명을 요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일본 기업들은 옛날 자료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또한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일본 기업 측에서도 대리인을 선임해서 재판에 임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월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피고 측에서 뒤늦게 소송위임장과 준비서면 등을 제출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구체적인 대답 대신 재판 진행 관련 법리적 주장을 펼쳤다. 대리인은 "1심은 첫 기일에 변론을 종결하고 각하 판결했다. 각하 판결이 정당하다면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해야 하고, 부당하다면 1심에서 제대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파기환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면 판단해보겠다고 밝혔다. 2차 변론기일은 오는 7월 20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이 사건은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8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유사 사건 중 소가의 규모가 가장 큰 사건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에 대해 보유한 개인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는데, 이는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된 결과로 원고 측은 즉각 항소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