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부담 누적돼 우유·맥주값 올렸지만 뒷맛 씁쓸
정부 물가안정책에 '눈치'...소비자 지갑닫힐까 '불안'
가격 동결 대신 품질 낮추거나 용량 줄이기 대응도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가장 많이 팔리는 저가형 우유 2개들이 묶음상품은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납니다."
이달부터 제품 가격 줄줄이 인상됐지만 유업체들의 표정이 어둡다. 가격을 올렸음에도 수익성 개선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국산 맥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먼저 가격 인상을 단행한 오비맥주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우유, 설탕, 식용유 등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과 동시에 경기침체 그늘까지 드리우면서 식품업계 전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우유협동조합,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동원F&B 등 유업체들은 이달 1일부터 흰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서울우유 흰우유는 편의점 기준 200㎖ 제품은 기존 11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랐고 1L 제품은 3050원에서 3200원으로 4.9% 인상됐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동원F&B, 빙그레 등 유업체들도 이달 흰 우유, 가공유, 발효유, 치즈 등 유제품 가격을 4~9%가량 올렸다. 시중에 판매하는 흰 우유 가격은 편의점 기준 3000원 중반대, 대형마트 기준 3000원 초반대로 가격이 조정됐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이번 우유 가격 인상은 낙농진흥회가 이달부터 우유 원료인 원유 가격을 1리터당 88원(8.8%) 인상한 1084원으로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유업체들이 원유 가격 인상분을 유제품 출고가에 반영한 것이다.
통상 가격 인상 이후에는 업체의 수익성도 개선된다. 그러나 올해 가격 인상 국면에서 유업체들의 표정은 유독 어둡다. 인상 폭을 최소화해 '가격을 올려도 남는 게 별로 없는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심리적 가격저항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우유는 지난달 토핑형 요거트인 비요뜨 제품의 가격을 500원(27.8%) 올리기로 계획했다가 소비자 반발에 밀려 인상폭을 200원(11.1%)으로 낮췄다.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자 유업계는 유통채널의 할인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줄이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 서울우유는 올 하반기 TV 광고 등 마케팅 활동을 대폭 줄였다, 그 외 유업체들도 단백질식품 등 신사업 이외의 마케팅을 최소화하고 있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원유가 상승분에 유통마진을 떼면 흰 우유 팔아서 남는 게 없다"며 "가장 잘 팔리는 흰 우유 2개들이 묶음상품은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여서 반갑지가 않다"라고 토로했다.
맥줏값 인상 포문을 연 오비맥주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상태다. 오비맥주는 오는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9% 올린다. 올 상반기 한차례 인상을 검토했다가 정부 요청으로 가격 동결을 이어왔지만 하반기 들어 인상요인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하자 기습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관련해 맥주 1ℓ당 붙는 주세는 지난 4월부터 전년 대비 30.5원 오른 885.7원이 됐다. 맥주의 원료인 맥아 가격은 지난해 전년(2021년) 대비 48% 급등했고 캔맥주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가격도 2021년부터 올해까지 연간 40%가량씩 상승했다.
국산 맥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1위 업체인 오비맥주부터 인상 백기를 든 모양새이기도 하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가 올해들어 '테라+켈리' 투트랙 공세를 강화하고 오비맥주는 세컨브랜드 한맥을 띄우며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인상요인 대비 인상폭을 최소화한 배경에는 정부의 물가안정책, 맥주시장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우윳값 인상으로 인한 밀크인플레이션과 설탕값 상승으로 인한 슈거플레이션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빙그레는 이날부터 편의점을 제외한 대형마트 등 유통 채널에서 ▲홈(떠먹는 아이스크림)류 ▲미니류 ▲끌레도르류 등 3가지 품목을 각각 출고가 기준 300~500원 인상한다. 편의점은 11월 1일부터 인상이 적용된다. 해태아이스크림도 같은 날 대형마트 등 유통 채널에서 ▲마루홈컵 ▲마루미니컵 ▲쿠키마루 파르페 등 판매 가격을 500원씩 올린다. 남양유업은 카페 브랜드 백미당의 제품 판매가를 지난달 26일부터 200~500원 상향 조정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제과제빵 업체들도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커피 원두 가격 상승세는 지난해 대비 꺾여 숨통이 트였지만 설탕값이 크게 뛰고 우유값도 상승해 원가부담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체들도 설탕값 상승에 예의주시 하고 있다. 유가와 환율 상승도 주요한 부담 요소로 지목된다.
서울 시내의 대형마트 주류코너의 모습. [사진=뉴스핌DB] |
다만 식품업계는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잇따라 가격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 칼날이 거센 상황에서 연 2회 인상은 업체로서도 부담스러운 셈이다. 또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도 현실화하고 있다. 가격 인상 폭이 높을 경우 소비자들의 외면이 기존보다 거세게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치킨프랜차이즈 BBQ는 최근 올리브유 급등으로 원가부담이 심화되자 제품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품질 낮추는 방향을 택했다. 기존까지 100% 올리브유로 치킨을 튀겼던 BBQ는 이달부터 튀김유를 올리브유 50%함량의 제품으로 튀김유를 교체했다.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주요 산지인 스페인 등의 작황 부진으로 지난 2020년 7월 t당 약 3000유로에서 현재 t당 약 1만유로로 약 3.3배 급등했다.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대신 품질을 낮춰 기존 가격을 유지한 것이다.
경기침체 우려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식품업계에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품질을 낮추거나 용량을 줄이는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소비심리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가격을 올려도 걱정이다"라며 "더욱이 먹거리는 100원 단위로 소비자들의 선택이 갈리기 때문에 인상을 하더라도 적정선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