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 제쳐두고 엑스포 유치 위해 강행군
12개 그룹, 175개국 3000여명 고위급 인사 면담
기업들도 역량 총동원해 홍보활동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우리나라가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돌며 온 힘을 다한 재계 총수들과 기업들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부산은 29표 득표하면서 2위로 유치에 실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가 119표로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확정됐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후보지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
이에 부산 유치를 위해 누구보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총력을 기울였던 재계는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막대한 경제효과와 국격 상승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유치전에서 보여준 재계 총수들과 기업들의 모습은 결과에 관계없이 박수를 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역을 나눠 전담 마크한 대기업 12개 그룹은 지난해 6월 부산엑스포 민간유치위원회 출범 후 175개국 3000여명의 정상·장관 등 고위급 인사를 만나 유치 지지를 호소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개최한 회의만 1645회였다.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야말로 이 기간동안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엑스포 유치에만 매달렸다. 이동한 거리만 지구 17바퀴에 해당하는 70만㎞에 달할 만큼 강행군을 펼쳤다. 최 회장과 SK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방문했거나 면담한 나라만 180여개국, 직접 면담한 고위급 인사는 900여명이 넘는다.
올해 6월 말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입은 최 회장은 목발을 짚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목발에는 '부산엑스포' 로고가 새겨져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전용기 대신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해외 출장 때마다 각국 고위 관계자들과 접견을 갖고 부산엑스포 지원을 당부했다. 지난 7월에는 남태평양 국가 피지·통가·사모아를, 8월에는 독일, 10월에는 스웨덴과 영국을 찾는 등 이 회장은 매달 해외 출장에서 부산엑스포를 챙겼다.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사장단도 발벗고 나섰다. 이들을 비롯해 지역총괄장 및 법인장 등이 만난 국가만 총 50여개국으로, 600여회 이상 미팅을 진행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정 회장 본인은 베트남, 체코 등 20여개국 출장을 통해 민간외교 활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021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부산 엑스포 지원 전담조직을 꾸리며 체계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BIE 행사를 비롯해 각국 정상회담에 의전차량으로 전기차를 제공하면서 친환경 엑스포를 부각시켰다.
또 부산엑스포 관련 창작물을 프린팅한 아트카들을 파리에 투입,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도 했다. 아트카는 루브르박물관과 개선문 등 주요 명소를 비롯해 BIE 본부와 각국 대사관 인근 지역을 다녔다. 투표가 진행된 이날에는 회의장 주변을 집중적으로 돌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최종투표를 앞두고 예정됐던 사업보고회와 임원인사 등 중요 경영일정까지 조정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탰다. LG는 파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메시지가 적힌 '부산엑스포 버스' 2030대를 운영하고, 도심 곳곳에 약 300개의 광고판을 집중 배치했다.
부산과 인연이 깊은 롯데그룹, 그리고 신동빈 회장 역시 열성적으로 나섰다. 롯데그룹은 이날까지 롯데월드타워에 부산이 엑스포 투표 기호 1번임을 알리는 'BUSAN is NO. 1' 메시지를 띄운다.
이밖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은 해외 출장이나 다보스포럼, CES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부산엑스포 유치에 활용했다.
결과는 아쉽게 됐지만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 우리나라 재계는 그 역량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말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재계가 힘을 합쳐 보여준 모습과 역량을 감안하면 다음 도전은 꼭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