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포기 의사만 보여도 지원 가능
"인도적 지원은 어떤 경우도 해야"
당국자 "北에 로드맵 제시한 것"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밤 방영된 KBS특별대담에서 남북정상회담 등 대북현안에 신중한 입장을 밝힌 건 핵・미사일 도발위협과 한반도 정세가 녹록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이 직접 대남 '적대(敵對)'를 입에 올리고 핵 공격과 남침도발을 노골화 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교류가 쉽지 않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7일 밤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대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024.02.07 leehs@newspim.com |
윤 대통령은 먼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든 안 하든 할 수 있다"며 열린 입장을 보였다.
이는 조건만 성숙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나 동결 등을 포함한 의제를 다룰 김정은과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대통령 재직 시기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질문에 "정치적 국면 전환 면에서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저는 선거 때부터 이런 보여주기식 외교나 보여주기식의 정치 일정은 안하겠다고 국민들께 말씀드렸다"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원론적으로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현 단계에서는 성사가 쉽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톱다운(top-down)이 아닌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정상회담으로 가는 수순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이 "양국의 실무자들 간에 교류와 논의가 진행되면서 의제도 만들어놓고 거기에 대해 결과를 조금 준비해놓고 정상회담을 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끌고 나가는 것은 결국은 또 아무 결론과 소득 없이 보여주기를 하는 것에 끝날 수가 있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장관급 등에서 충분한 협의가 이뤄진 뒤에 정상이 만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읽혀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저녁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대통령실이나 국가정보원의 측근 인사가 비밀접촉을 통해 덜컥 합의한 뒤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하는 깜짝쇼 방식은 맞지 않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인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전반적으로 북한 김정은과 그 체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이면서도 인도적 지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도 드러난다.
특히 취임사 등에서 강조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한동안 대통령과 정부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사라졌던 '담대한 구상'을 언급한 점은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은 핵 개발을 하면서 경제는 파탄 낸 북한 체제를 '비이성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인프라 건설을 포함한 대규모 대북지원이 가능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북한이) 완전히 핵 포기를 안 하더라도 핵 고도화 노선에서 변경하고, 포기 의사를 보인다든지, 포기를 위한 실행 착수만 한다고 하더라도 담대한 전략적 지원을 하겠다"고 강조한 대목은 대북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김정은에게 제시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시 대북정책 기조인 '담대한 구상' 가운데 대북지원을 다시 언급하면서 '전략적'이란 표현을 추가한 대목은 향후 대북접근이 더 정교하고 공세적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핌] 7일 강원도 김화군의 김화종이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장에서 만든 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단출한 제품과 수준이 열악한 북한 경제실태를 엿보게 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4.02.08 |
이와 함께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인도적인 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김정은의 대남 위협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의약품 등 일부 물품의 경우 북한에 언제라도 보낼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
이는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과 관련해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며 이분들이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그런 도움을 줘야 한다"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수 있다면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이 개선될 수 있는 그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분선된다.
윤 대통령은 김정은이 최근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노골화 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엄청난 변화"라고 밝히면서도 "북한이 펴는 주장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의 대담은 자체 핵개발 주장과 관련해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라고 밝히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강조하는 등 우리의 안보실태와 한미동맹, 국제사회와의 교역・교류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한 수위에서 발언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북한은 거부입장을 보이며 대남 비난 수위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8일 "현재의 상황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윤 대통령과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국민에 알리고 임기 내 남북관계 로드맵을 북한 측에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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