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하이닉스에 몸담은 정통 '하이닉스맨'
R&D투자로 'AI시대' 기회 포착...HBM 주도권 확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CEO의 일거수일투족은 해당 기업 임직원은 물론 시장 투자자 등 많은 이해관계자의 관심사다. CEO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활약상을 연중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AI(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사회에 나가면 맞이할 가장 큰 첫 번째 숙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점점 더 빨라질 변화의 파도에 잘 올라타야합니다.".
지난 2월 23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제117회 학위 수여식에서 강단에 올랐다. 고려대학교 84학번인 곽 사장은 졸업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선배로서 특별강연 강사로 나선 것이다.
이날 축사에서 곽 사장이 졸업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부분은 AI시대 변화였다. 그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드디어 AI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고, 우리 사회도 이쪽 방향으로 굉장히 빠르게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 31년 몸담은 '정통 하이닉스맨'...위기를 기회로 활용
곽 사장은 1994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로 입사해 31년 동안 SK하이닉스에 몸담은 정통 'SK하이닉스맨'이다. 고려대학교 재료공학 학사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재료공학 석사와 박사를 따 전문성을 다졌다. 현대전자에 입사하기 전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키스트 광센서연구실 위촉연구원으로 있었다.
2022년 3월 이사회를 거쳐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올라서기 전까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상무)과 청주 FAB담당(전무), 제조·기술(부사장), 안전개발제조총괄(사장)을 거쳤다.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후 곽 사장이 마주한 반도체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다. 2022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반도체 업황 호황기는 2022년 하반기부터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같은 해 4분기엔 D램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며 반도체 기업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야했다.
SK하이닉스 역시 2022년 4분기부터 1조9122억원이란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했고, 2023년 1분기 3조4023억원, 2분기 2조8821억원, 3분기 1조7920억원의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D램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감산에 돌입했지만, D램 반도체 가격 상으로 빠르게 이어지진 못 했다.
이 같은 위기 속 곽 사장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 경영 체질 개선에 나섰다. 곽 사장이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수익성 개선을 위한 변화다. 그는 수요 부진 제품에 대한 감산에 나서는 한편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해 매출·생산·재고 등을 최적화 해 시장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이에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비용(CAPAX)은 전년 대비 50% 이상 줄었지만,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12.80%로 2021년 9.40%, 2022년 11.00% 보다 높은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HBM 주도권 쥔 하이닉스...고성능 D램 경쟁력도 강화
이 같은 위기 대응 전략이 주효하게 작용했던 부분은 HBM 시장이었다. AI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부터 SK하이닉스는 HBM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이어왔고, 그 결과 2023년 AI반도체 시장 개화와 맞물려 HBM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4월 업계 최초 12단 적층 HBM3을 개발한 데 이어 2024년 3월 본격적인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HBM3 매출액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성장했고,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곽 사장은 지난달 27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해 전체 D램 판매량 중 HBM 판매 비트(Bit) 수가 두 자릿수 퍼센트로 올라와 수익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HBM에 대해 "올해는 계속 경쟁력을 강화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HBM 뿐 아니라 고성능 D램 경쟁력 역시 강화해 나가고 있는데, 올해 초부터 시작된 반도체 업황 개선 흐름을 타고 D램 사업의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서버향 DDR5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2023년 1월 10나노급 4세대 DDR5로 세계 최초 인텔 인증을 획득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DDR5 매출액은 전년 대비 4배 이상으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남은 과제는? AI시대, 새로운 기회 포착
앞으로 곽 사장의 과제는 변화하는 AI시대, 반도체 사업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시장 파이를 가져오는 일이다. 올해 초 삼성전자 AI폰 출시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산업은 온디바이스AI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경우 고성능, 고용량 모바일 D램이 필수적인데 모바일 D램 시장에서 세대교체 시기에 반도체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국이 반도체 기술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이어가며 반도체 기업들이 속속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 이 같은 불확설성과 변화를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도 주어진 과제로 남았다. 지난 3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을 투자해 HBM 생산기지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발표한 첫 미국 내 대규모 투자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은 "인디애나 공장에서는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을 양산한 예정"이라며 "이것을 통해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을 활성화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abc1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