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육아휴직 기간 52주…OECD 회원국 중 상위권
육아휴직 사용률은 남녀 모두 OCED 최하위 수준
기업규모별 편차도 심해…10인 미만 6.1%에 그쳐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우리나라의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 보장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에 속하지만, 실제 활용도는 최하위에 수준이다.
소득 감소, 고용 불안, 사내 눈치, 남성의 육아휴직 기피 현상 등 여러 이유가 맞물리면서 제도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이에 정부 내 출산·육아 종사자 및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사회적 여건 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 중 하나로 꼽는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한국, 육아휴직 기간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사용률은 최하위
7일 고용노동부, 통계청,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OECD 등 관계부처 및 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은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에 속했지만, 실제 사용률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사진=셔터스톡] |
OECD의 '가족 데이터베이스(Family Database)'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육아휴직 기간은 52주(1년)으로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 핀란드(143.5주)가 가장 길고, 이어 헝가리(136주), 슬로바키아(130주), 라트비아(78주), 노르웨이(68주), 에스토니아(67.9주) 순이다. 한국은 에스토니아에 이어 7번째다.
특히 한국 남성이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다만 2020년 기준 한국 육아휴직 사용률은 남녀 모두 20개국 중 OECD 최하위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업체 중 2022년 사용 실적이 있는 사업체는 11.9%에 불과했다. 기업 10곳 중 1곳만 육아휴직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육아휴직 사용률은 기업규모별 차이가 극심하다. 사업체 규모별 육아휴직 사용률은 5~9인 및 10~29인 사업체 각 6.1%, 11.9%였고, 30~99인 사업체 28.7%, 100~299인 이상 사업체 43.0%, 300인 이상 사업체 48.7%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사용실적이 있는 사업체 비율이 높아졌다.
근로자가 느끼는 육아휴직 제도 활용도도 기업 규모별로 확연히 달랐다. 300인 이상 사업체 95.1%가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답했지만, 5~9인 사업체는 47.8%로 절반에 그쳤다.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힌 사업체도 조사 대상의 20.4%에 이른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은 데는 소득 감소, 고용 불안, 사내 눈치, 남성의 육아휴직 기피 현상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특히 소득 감소 요인은 남성의 육아휴직 기피 현상 1순위로 꼽힌다. 외벌이 남성의 경우 육아휴직 시 가계 소득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기존 소득 대비 육아휴직급여로 받는 금액의 비율)은 한국이 44.6%에 불과했다. OECD 38개 회원국 중 27개국이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데, 한국의 소득 대체율은 이 중 17번째로 하위권이다.
상위권에 위치한 주요국들을 살펴보면 에스토니아·슬로베니아·칠레 100%, 체코 88.2%, 리투아니아 77.6%, 아이슬란드 71.3%, 오스트리아 71.2%, 룩셈부르크 67.1%, 독일 65.0%로 나타났다. 한국과 인접해 있으면서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도 59.9%로 60%에 육박했다.
한국의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 이상된 근로자 중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의 양육을 위해 최장 1년간 받을 수 있다.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80%를 받을 수 있는데, 상한액과 하한액은 각각 150만원, 70만원이다. 상한액 기준에 부합해도 150만원 중 일부는 소득세로 납부해야 한다.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100만원대 초반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지난 2일 발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취업자들은 근로소득(실수령액 기준)의 약 80.1%(평균 약 266만6000만원)가 육아휴직을 결정할 수 있는 적정 급여액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소득대체율을 두 배가량 높여야 한다.
이번 인식조사에 참여한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나라마다 물가도 있고 상황도 다르기에 금액으로 하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조사 결과로는 받는 총액 대비 한 80% 정도면 육아휴직을 쓰기에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 필요성…근로자 선택권 부여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낮은 육아휴직 사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
자동 육아휴직제는 출산휴가 후 별도의 신청 없이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제도를 말한다. 만약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2개월을 모두 사용할 경우 최대 15개월간 출산에 따른 유급휴직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근거로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당장 시행 가능한 제도라는 판단이다.
[자료=통계청] 2024.05.07 jsh@newspim.com |
고용부가 올해 2월 발표한 '육아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육아휴직을 시작한 사람은 전년 대비 14.2%(2만4866명) 증가한 19만9976명으로 나타났다. 엄마 육아휴직이 72.9%로 아빠 휴직(27.1%) 보다 약 2.7배 많았다.
정부 내에서 출산·육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담당자는 "저출산 관련 정책 중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건 육아휴직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육아휴직을 자동으로 쓰게끔 한다면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을 받기 위한 신청 절차도 복잡하고, 회사 내에서 결제받는 과정들도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쓰기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사용자에게 편리하게 또는 사용자 눈치를 덜 보게 하는 방식으로 자동 육아휴직제는 나름의 의미 있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다만 강 연구위원은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도 의무화를 시행할 경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법적 처벌이나 벌칙 규정 등이 명확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연구위원은 "자동 육아휴직제라는 건 결국 신청 방식과 그걸 부여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반드시 자동 육아휴직제를 써야 하는데, 썼을 때와 쓰지 않았을 때 처벌 금지 규정이나 벌칙 규정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따라와야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강 연구위원은 소득 감소 요인을 근로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동 육아휴직제가 가능하게 하려면 급여가 80~90% 수준까지는 올라와야 하는데, 당장 소득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억지로 자동으로 쓰라고 강요하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면서 "근로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해 자연스레 안착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