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원작 소설 기반, 고아성의 섬세한 연기 돋보여
뒤늦은 개봉,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 속도감 못 따라가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에세이집이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던 적이 있다. 그당시 책의 제목을 두고 청춘들에게 아픔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청춘이 아픈 건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까닭이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제목만 놓고 보면 '반국뽕' 영화처럼 보인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록새록 애국심이 샘솟는 영화는 아닌 게 분명하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여오하 '한국이 싫어서'의 한 장면. [사진 = ㈜엔케이컨텐츠] 2024.08.22 oks34@newspim.com |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발표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장건재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10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상영됐다. 이 영화의 탄생 이력을 세세하게 살피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내내 좀 늦게 개봉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20대 후반의 계나(고아성)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아성이 계나를, 김우겸이 계나의 오랜 연인 지명을, 주종혁이 뉴질랜드에서 만난 친구 재인을 연기했다. 원작소설 속에서는 계나가 호주로 떠나지만 뉴질랜드로 바뀐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계나는 7년째 교제 중인 오랜 연인 지명에게 이별을 고하고 뉴질랜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오랜 연인이지만 지명의 집안에 비하면 계나의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그런 점들로 인해 계나는 마음 한편이 늘 불편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침 일찍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2시간 거리의 직장에 출퇴근해야 했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입사한 IT회사에서는 늘 상사와 부딪힌다. 마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염미정(김지원 )을 보는 것 같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한국이 싫어서' 한 장면. [사진 = ㈜엔케이컨텐츠] 2024.08.22 oks34@newspim.com |
계나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한국어 선생님, 가게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현지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개성이 넘치는 또래 친구 재인(주종혁)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그사이 귀국할 일이 생겨서 옛 연인인 지명을 다시 만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가족과도 재회한다. 그러나 계나는 다시 '내가 진짜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며 새로운 여행지로 떠난다.
영화는 계나의 한국과 뉴질랜드 생활을 교차 편집하면서 청춘의 고민과 방황, 모색을 전한다. 나름대로 청춘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행복에 대해서도 주인공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얘기한다. 원숙해진 고아성과 두 신인배우인 주종혁과 김우겸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특히 고아성은 계나의 감정변화에 따른 섬세한 표정연기를 잘 소화한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 사회의 속도감을 영화가 따라잡지 못한다. 관객들은 한국이 싫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고 되물을 지도 모른다. 많은 질문들과 마주하면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답답함을 느껴야 하는 영화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면 불과 몇 년전 한국 사회에서 청춘들이 느꼈던 생각과 당대의 청춘이 느끼는 생각 사이에는 엄청난 괴라감이 있다. 한마디로 '한국이 싫어서'는 신선도가 떨어진 생선회 같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