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하나·SC제일은행으로부터 1.2조원 차입 예정
메리츠증권에서도 사모사채 1조원 조달…금리 연 6.5%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고려아연이 회삿돈을 짜내 자사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증권사에 이어 은행에도 손을 벌렸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대상 주식 전부를 담보로 걸고 은행들로부터 1조2000억원 상당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자수입만 수백억 원대로 예상되고, 고려아연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공개매수 대상 주식 전부를 담보로 잡았으니 은행은 안정적인 영업을 하게 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조6635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위해 자기 자금 5000억원을, 차입금 2조1635억원을 투입한다. 1조원은 메리츠증권으로부터 발행한 사모사채로 마련한 자금이고, 나머지 1조1635억원은 은행에서 차입했다.
8일 기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자금 조달 및 차입 현황. [사진=뉴스핌] |
고려아연에 자금을 댄 은행은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이다. 금리는 최소고정금리 5.5%, 최초 변동금리 4.67%로 만기는 최초 인출일로부터 9개월·1년으로 잡았다. 차입일은 오는 21일이다. 고려아연이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은 한도 안에서 최장 인출일로부터 1년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대출 형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담보다. 고려아연은 담보로 ▲공개매수자가 공개매수에 따라 소유하게 되는 대상회사 주식 전체에 대한 1순위 질권 ▲공개매수자가 공개매수에 따라 소유하게 되는 대상회사 주식이 예치되는 공개매수자 보유 증권계좌에 대한 1순위 질권 ▲공개매수대금예치를 위해 개설된 공개매수자 명의의 계좌에 대한 1순위 질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총액은 2조6635억원으로 이 가운데 부채 비율이 81.2%에 달한다. 애초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재원 중 자기 자금을 1조5000억원으로 신고했다.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사모사채를 발행받아 마련한 자금 1조원을 자기 자금으로 분류한 것이다. '빚내서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얘기가 나왔고 지난 7일 자기 자금을 5000억원으로 수정했다. 이런저런 잡음에도 공개매수 재원의 80%가량을 빚으로 마련하고 그 돈으로 매수할 주식 전체를 담보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고려아연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반면 은행은 대출로 많은 이자수익을 얻게 됐다. 고려아연은 만기 9개월 기준 총 대출이자 295억3107만원을 포함한 1조1930억원을 갚아야 한다. 만기 1년 기준으로는 총 대출이자 349억5319억원을 비롯해 1조1984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은행은 이자수입만으로 최대 350억원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공개매수 대상 주식 전부를 담보로 잡아뒀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출혈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이달 4~23일에 걸쳐 주당 83만원에 302만9009주의 자기 주식을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한 상태다. 자사주 매입에 드는 비용은 총 2조6635억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지금 상황이 어수선한 건 맞지만 워낙 대기업이고 그동안 수익성도 좋았기 때문에 대출 상환에 큰 우려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1조원을 댄 메리츠증권도 355억원 상당의 이자수입이 예상된다. 고려아연이 증권사로부터 사모사채까지 발행받은 건 부족한 자기 자금과 은행 대출 한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기 자금은 7600억원으로 현재 공시한 공개매수 자금 중 자기 자금 5000억원만 해도 과반이 넘는 회삿돈을 쏟아부은 셈이다. 은행이 긴급하게 설정한 대출 한도도 1조7000억원이라 조 단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채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1년 만기에 금리 연 6.5% 조건으로 사모사채를 발행했다. 연 7%는 'AA+(안정적)'로 평가받는 고려아연 공모채 조달금리 연 3% 대보다 무려 3.5% 포인트(p) 높다.
분쟁 상대인 MBK파트너스도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위해 다각도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활용해 1조9595억원을 빌렸다. NH투자증권으로부터 연 5.7% 금리로 1조5785억원을 빌렸고 영풍에서 2713억원을, MBK파트너스 6호 사모투자 합자회사에서 1097억원을 차입하기로 했다. 연간 이자부담만 약 841억원 상당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촉발한 '쩐의 전쟁'이 금융권 전반에 퍼지면서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부원장 회의에서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경쟁과열로 보이는 측면이 있어 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자본시장 신뢰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근거 없는 루머나 풍문 유포로 투자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 불공정거래 발생 여부에 대해 면밀히 시장 감시를 실시하고, 필요시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 적발된 불법행위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청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날 오전 임원 회의에서도 "과열양상을 보이는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대해서는 엄정한 관리·감독과 즉각적인 불공정거래 조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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