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미·중 전략경쟁 격화 시기에 법 개정
간첩 행위 '자의적 해석' 가능...처벌도 강화
중국 진출 한국인 전문직 종사자 크게 위축
한·중 관계, 민간교류 확대에 '찬물' 우려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중국 반도체 업체에서 일하던 한국 교민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구속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중 관계에 미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중국이 한국인에 '반간첩법'을 적용해 구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구속된 50대 한국 남성 A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다. A씨는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에 스카우트돼 2016년부터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3~4곳의 중국 반도체 기업에서 일해왔다고 한다.
A씨를 구속한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시 국가안전국은 A씨가 반도체 관련 정보를 한국에 유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신화사=뉴스핌 특약] |
중국의 반간첩법은 미국·영국·캐나다·일본 등 서방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으로 의심받아왔다. 이 법이 처음 만들어진 2014년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동중국해 등의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하던 시점과 일치한다. 반간첩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이 법으로 처벌받은 일본인은 17명에 이른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3기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 이 법을 개정해 간첩 행위에 대한 적용 범위와 법 해석을 크게 확대하고 처벌도 강화했다. 개정된 반간첩법은 기밀 정보와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거나 제공하는 행위를 간첩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 안보 및 이익'을 자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이 법을 활용할 여지가 넓어진 것이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 격화로 첨단기술과 공급망의 '디커플링'이 진행되던 시점에 중국이 반간첩법을 개정해 적용 범위를 넓히고 처벌을 강화한 것은 중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에 동조하는 나라를 겨냥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이 법에 따라 처벌된 서방 출신 민간인들이 다수 나왔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지난해 이 법이 개정됐을 때 중국 교민과 여행객들에게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번 A씨 구속으로 정부의 우려가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에 진출한 많은 한국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중국에 스카우트된 반도체·IT·제약·바이오 등 첨단 전문직 종사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신변에 불안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번 사건은 최근 고위급 접촉을 늘려가며 조금씩 풀려가던 한·중 관계와 민간 교류 확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open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