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SOC 예산 집행 70% 목표 내세웠지만… 현실은 유찰 연속
공사비는 낮은데 리스크는 높아… 업계 "안 하는 게 나아"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정부가 침체한 건설업황을 지원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공사의 조기 발주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다수의 공공공사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사 난도가 높아 사업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되거나 적정 공사비가 책정되지 않은 사업이 주요 대상이다. 공사 원가율 부담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아 이런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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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4월 유찰된 주요 공공공사 목록.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 도로부터 철도까지… 사업성 떨어지는 공공공사, 거듭 유찰
1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강원도가 조달청을 통해 입찰 공고한 서면대교 건설공사는 응찰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춘천시 중도(레고랜드)에서 서면을 연결하는 연장 770m 교량 및 1.25km 길이 도로를 신설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는 1085억원이다. 당초 도는 오는 10월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유찰로 인해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찰 원인으로는 과도하게 낮은 공사비가 지목된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수석대교(경기 남양주시 수석동~하남시 미사동, 연장 1㎞)의 경우 추정 공사비가 3801억원이었다. 서면대교 공사비 자체가 2022년 단가를 기준으로 책정돼 있어 이 가격으로 들어올 업체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업계 의견이 지배적이다. 도는 연내 착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사비 조정에 착수할 방침이다.
지난해부터 사업자를 찾아나섰던 대구 도시철도 4호선(엑스코선) 2공구는 지난달 세 번째 입찰에서도 코오롱글로벌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했다. 대구 동구 이시아폴리스역~신암동 구간에 8개 역사와 차량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추정 사업비는 약 4346억원이다.
지난해 8월과 9월 각각 실시했던 1·2차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에서도 코오롱글로벌 컨소시엄만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구시는 올 2월부터 코오롱글로벌과의 수의계약 절차를 개시했다. 이달 기본설계 심사 후 가격 협상을 거쳐 연말쯤 본계약 체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해당 공구 유찰 요인으로는 공사 난도에 비해 높지 않은 사업성이 지목된다. 통상 철도 공사에서는 구간 중 협소하거나 바다, 강 등 물을 지나는 곳이 있으면 더 높은 기술력과 공사비를 요한다.
김강수 한구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교통 관련 공사 단가는 터널, 교량 설치나 문화재, 농지, 군사 시설 등 시공 제약조건의 증가에 따른 협의 절차 또는 우회로 인한 증가 등으로 인한 부대비용 증가에 의해 증가한다"며 "공사 현장 지형 조건을 극복하는 고도의 공법 적용으로 인해 비용이 늘어나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의 경우 지난주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지위를 박탈하기로 하며 착공 지연이 확실시됐다. 공항시설뿐 아니라 접근도로 건설공사 사업자를 찾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12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이 사업의 다섯 번째 PQ 공고를 냈다.
부산 강서구 송정동과 가덕도신공항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 총 9.35㎞의 일반도로 및 해상·육상 교량을 짓는 사업으로 공사 기간은 착공일로부터 6년 2개월이다. 정부는 2031년을 개통 목표로 삼았으나 지난해부터 이어온 입찰에서 세 번 연속 유찰되다 지난달 4차 입찰에서 한신공영만 응찰했다. 공사비는 5743억원으로, 사업지 내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하류 철새 도래지가 있는 등 리스크가 큰 곳임에도 사업비가 과도하게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3차 입찰 때 160억원 증액했다.
이밖에도 충북 오창에 들어설 최첨단 연구시설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기반시설 건설공사'(공사비 2404억원)도 사업자를 물색하고 있다. 지난달 김포시 장기동·감정동 일원 123만㎡ 부지에 주거·상업시설 등을 짓는 2조4000억원 규모 대형 도시개발사업 '이음시티' 민간사업자 공모에도 신청서를 낸 회사가 한 곳도 없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공사비가 기록적으로 오른 상황에서 투입 비용이 비교적 큰 SOC 사업에 무리하게 들어가려는 회사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 업계 "예산 조기 발주 문제 아냐… 투자 금액부터 늘려야"
비교적 규모가 큰 공공공사도 유찰을 거듭하면서 업계에선 SOC 조기 발주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상반기 전체 SOC 예산의 약 70%인 12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동시에 전년 동기(60%) 대비 10%포인트(p) 높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 해결 방안을 내놓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공공공사 유찰의 가장 큰 원인이 비현실적인 공사비에 있다는 결론을 내고 지난해 말부터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화를 중점 추진하고 있다.
공사비 산정에 활용되는 공사비보정기준(표준품셈)이 시공 여건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공사비 할증이 가능도록 기준을 세분화·신설했다. 이를 통해 국책 사업의 낙찰률을 1.3~3.3%p 높이고자 한다. 약 30년 동안 5~6% 선으로 고정돼 있던 일반관리비 요율도 300억원 미만 중소규모 공사를 대상으로 1~2%p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법 입법예고를 마쳤다.
건설업 활성화를 위해선 집행 속도보다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간 건설투자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SOC 예산이 감소하며 공공부문 투자까지 쪼그라든 상황이라서다. 2010년 46조3000억원이던 SOC 예산은 2021년 53조4000억원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감소세가 이어지며 2023년에는 42조6000억원까지 내려왔다.
최근 인건비와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업계에서 실제로 느끼는 예산 감소 영향은 더욱 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3월 건설 공사비 지수는 131.23으로 지난해 12월(130.12)과 비교할 때 세 달 만에 0.9% 상승했다. 기준선이 되는 2020년 1월(100) 대비 30% 넘게 오른 셈이다.
건설공사비 변동에 따른 SOC 예산현액(그해에 실제로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2010년 60조4000억원에서 2023년 33조1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의 SOC 물량이 절반으로 급감한 셈이다.
엄근용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SOC 투자 확대와 재정 여력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사업집행 점검 등을 통해 SOC 이월액과 불용액을 최소화해야 건설업이 직면한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뿐 아니라 중장기 경기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며 "건설과 관련한 협회 차원에서 SOC 예산의 선택적 증액 여건을 조성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