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에어버스와 BNP파리바, 까르푸, 필립스 등 유럽의 대표적인 대기업 44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것으로 평가되는 '인공지능(AI)법'의 시행을 연기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모호하고 중복되는 규제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유럽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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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에서 참가자들이 AI 데모존을 관람하고 있다. 2025.07.02 choipix16@newspim.com |
CEO들은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공개 편지에서 "EU의 엄격하고 복잡한 법 체계가 유럽의 AI 야망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유럽의 선두 기업은 물론, 모든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규모로 AI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위협한다"고 했다.
이들은 "AI법 시행을 2년간 유예해야 한다"며 "이런 유예는 전 세계 혁신가와 투자자들에게 유럽이 단순화와 경쟁력 강화 의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서한에 서명한 CEO들이 대표하는 기업은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과 BNP 파리바, 에어버스, 도이체방크, 미스트랄, 루프트한자, 지멘스, 로레알, 사노피, 스포티파이, 악사, EDF, 로프트, ASML 등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3조 달러를 넘고, 유럽 전역에서 고용하고 있는 직원은 370만명에 달한다.
FT는 "EU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개발을 규제하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것으로 여겨지는 AI법을 놓고 미국 정부와 거대 기술 기업, 유럽 단체들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3월 유럽의회가 AI법인 'AI액트(AI act)'를 최종 승인한 데 이어 5개월 후인 지난해 8월 이 법이 공식 발효됐다.
AI액트는 AI를 위험 수준에 따라 ▲용납할 수 없는 AI ▲고위험 AI ▲제한적 위험 AI ▲최소 위험 AI 등 4단계로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AI 스팸 필터 등 '최소 위험군'은 규제 대상이 아니며 챗봇 등 '제한적 위험군'은 가벼운 감독을 받는다. AI 의료 추천 기능 등 '고위험군'은 강한 규제를 받으며, 가장 위험한 '용납할 수 없는 AI'는 법적으로 전면 금지된다.
전체적인 틀은 마련됐지만 구체적인 조항이나 각 규제의 시행 시기 등은 추가 연구와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 8월부터는 생성형 AI가 포함된 범용 AI(GPAI)에 대한 규제를 본격 시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5월까지 '실행 강령'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내년 8월에는 고위험 AI체계에 대한 규정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규정 등에 대한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고, '실행 강령'의 경우에도 지난 5월까지 마련하기로 했지만 기한을 넘긴 상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논의는 '실행 강령' 초안 작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구글의 제미니, 메타의 라마, 오픈AI의 GPT-4와 같은 강력한 AI 모델에 적용되는 법률을 유럽의 AI 기업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U 집행위 디지털 담당 집행위원인 헤나 비르쿠넨은 "오는 8월 최종 시한을 앞두고 실행 강령 마무리에 전념하고 있다"며 "업계와 중소기업들이 AI법을 제대로 준수할 수 있도록 그 전에 실행 강령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 AI법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AI 스타트업 창업자와 투자자들 30여명은 별도의 공동 서한에서 "유럽의 AI법은 급조된 시한폭탄"이라며 "범용 AI 모델이 어떻게 규제될지에 대한 명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EU 각 회원국의 규제 시행 방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AI 시스템 구축을 꺼려 미국이나 중국의 경쟁사보다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