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김미령의 시집 '제너레이션'(민음사)은 각 부의 시작마다 '제너레이션'이라는 동명의 시가 실려 있다. 이 네 편의 시는 지도 위에 표시해 둔 힌트처럼 이 시집 속 풍경들을 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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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김미령 시집 '제너레이션'. [사진= 민음사] 2025.07.14 oks34@newspim.com |
첫 번째 '제너레이션'은 이제 막 죽어 멈춘 삶이 이야기가 되어 가는 신비로운 장면을 그린다. 두 번째 '제너레이션'의 화자는 과거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옛 동네에서 희미하게 번뜩이며 고요히 생동하는 과거의 풍경을 마주한다. 세 번째에 이르면 지금의 21세기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매혹적인 20세기 풍경이 펼쳐진다. 마지막 네 번째 '제너레이션'의 화자는 지금 살아 있는 우리 중 누구도 절대 경험하지 못할 머나먼 과거를 목격한다.
거듭 과거로 거슬러 오르며 펼쳐지는 이 네 개의 '제너레이션'이 보여 주는 것은 기억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움직이고, 누군가에게 닿아 제 기억처럼 스미는 신비로운 여정 그 자체다. 우리에게는 문득 솟아오르는 생각,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낯선 감정, 시시때때로 우리를 멈춰 세우는 생경한 기분으로 느껴지는 것들. 이를테면 우리가 모르는 새 우리에게 전해진 "유구한 슬픔"의 기원이다.
'숲길을 가다가 야외 수영장이 나왔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수영장엔 물이 없었고 갈라진 바닥에 풀이 나 있었고/ 때마침 지금이 겨울인 것도 때마침 내가 나인 것도/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 이제 막 알게 된 일' - '홈 비디오' 일부. 김미령은 낯선 세상과 마주하면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시니컬하게 묘사한다. 한눈에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간 속에서 기억은 하나하나 개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삶이라는 시간을 촘촘히 살아내는 '생활자'인 동시에 그 시간을 벗어나 삶을 조망하는 '관찰자'이기도 한 것처럼, 기억 또한 그렇게 존재한다.
'제너레이션'이 그리는 시대, 세대, 혹은 시절이라 명명할 거대한 시간 속에서 기억은 한순간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나의 바깥에서,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바라보고 활보한다. '나'를 벗어나 자유로워진 기억은 홀로 걷고, 앉아 있고, 박수를 치며 웃고, 무언가를 골똘히 응시한다. 숲속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유령들처럼 우글우글한 모양으로 서로 뒤섞인다.
'제너레이션'은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파도의 새로운 양상',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을 선보인 김미령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김미령의 시에서 기억은 무한한 탐험의 공간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그 모험의 시작과 끝을 그려 나갈 지도가 된다. 김미령은 두 번째 시집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을 통해 '찰나'에 깃든 무한의 풍경을 열어, '나'에게 깃든 무수한 타인을 우리에게 펼쳐 보여 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말 그대로 '세대'라는 거대한 단위의 시간을 지도로 삼아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값 12,000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