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8년 간 숨어살다 한국 정착
35살 늦깎이 대입 중·러 문학 전공
모스크바 유학 후 다문화 연구 몰입
"이주는 차별이 아닌 가능성 돼야"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목숨을 건 탈북길에 몽골 국경을 넘던 24살 금희 씨는 지프차를 타고 나타난 러시아군 장교와 마주쳤다. 학창시절 러시아어를 유달리 좋아했던 금희 씨는 이런저런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다.
불시에 떠오르는 단어와 표현이 통해서였을까. 무사히 한국행에 성공한 그는 남다른 성공신화를 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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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한국에 정착 후 대학원에서 다문화 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한 탈북민 출신 박사 최금희 뉴브릿지연구소 대표. [사진=남북하나재단] 2025.07.27 yjlee@newspim.com |
동해안 바닷가 도시인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최금희 대표는 1998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길에 올랐다. 당장 한국에 올 형편이 되지 않았던 최 대표는 자신을 숨겨준 조선족 집에 8년 동안 머물면서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도왔다.
결국 그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몽골로 넘어가 난민신청을 통해 2007년 한국에 정착했다.
최 대표는 35살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북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포기 한 공부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전재산 2000만원 들고 모스크바 유학길 올라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중어중문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학부 졸업후에는 1년 동안 모스크바 러시아 국립인문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중국어와 러시아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북대 대학원 노어노문학과에 진학, 톨스토이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따냈다.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석사까지 받았다. 또 대구가톨릭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해 다문화 분야 전공으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학부 과정을 겨우 마치기도 힘든 게 탈북민의 입장인 게 현실인데 어떻게 모스크바 유학까지 생각했을까.
최 대표는 탈북 과정에서 언어의 힘을 깨달았다고 한다. 학부 과정에서 러시아 문학을 복수전공한 것도 영어가 대세인 한국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마스터할 결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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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 참배에 동원된 주민들. [뉴스핌 자료사진] |
하지만 그 길은 만만치 않았다. 그냥 말을 떠듬거리며 할 수 있는 것과 해당 국가의 언어나 문학을 학문으로 전공한다는 건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자신의 실력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으며 절망스러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러시아에 가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전재산 2000만원을 들고 홀로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리고 1년여의 유학을 마치고 다시 석사과정에 도전했다고 한다.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석사 첫 학기 성적은 F였다. 석사과정은 전공교재를 비롯해 모두 원서였는데 문헌을 번역하는 건 기초 중의 기초였다.
◆첫 학기 성적 F에도 좌절 하지 않았다
첫 학기에 좌절을 맛보면서 교재를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는 알이 이어졌다. 그렇게 첫 1년을 버텼고, 그 시간이 아까워또 한 학기를 이어갔다.
어렵게 석사를 마쳤지만 박사과정에 도전하기 까지는 갈등이 많았다. 십 년째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는 선배나 경제적 문제 등이 어른거렸다.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할지, 아니면 공부를 이어갈지를 놓고 고민하던 시기에 그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철학 강의를 듣게됐다. 서양철학과 함께 동양철학에 심취되었던 어느 날 논어를 해석 하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최 대표는 "그때 논어 강의를 듣고 전율을 느꼈어요. 너무 재밌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문학을 이렇게 강의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대구의 한 갤러리 관장의 제안으로 8개월 인문학 유료 강의를 시작했다. 최 대표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인문학이 이렇게 흥미 있고 재미있었냐는 반응을 보이며 놀라워했다.
이후 최 대표는 잘나가는 강사로 변신했다. 2016년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에 출연하게 됐고 이듬해부터는 MBC, SBS 등에 출연하며 인문학 강사로 알려지게 됐다.
한 달에 35차례 강의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강의 자료를 만들기에 앞서 원서를 열 번씩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보충하는 등 공을 들인 때문이다.
최 대표는 "문학은 언어적 탐구와 함께 철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철학 스터디에서 자신을 갈고 닦고 있다는 얘기다. '백 마디를 듣고 열 마디가 남더라도 공부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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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한국 정착 후 남다른 향학열을 불태워 박사학위를 취득한 탈북민 출신 최금희 뉴브릿지연구소 대표가 다문화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5.07.27 yjlee@newspim.com |
그가 학문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2022년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여성연구소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다.
100 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완성하면서 빠져들었고 결국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석사학위 취득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탈북이란 험난한 경험을 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초국적 이주자들의 사회통합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다문화학을 선택했다.
공부와 함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학회 발표자가 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고 발품도 팔았다.
학술회의 등에서 발제자의 장점은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받아 부족한 점을 깨닫고 주제를 발전시켜 논문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 대표는 졸업까지 9번의 발표 기회를 가졌다. 2023년 봄에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제7회 세계인문학포럼 발표자 모집 메일을 받기도 했다.
◆KBS '아침마당' 누빈 인문학 강사로 알려져
인문학 강사로서 '사회통합 관점에서 시민 인문학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열심히 제안서를 준비했다. 경쟁률이 높았지만 결국 주제가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 대표는 "300명의 발표자와 3000여명의 시민과 연구자들이 참석해 진행된 발표는 성황리에 끝났고 대회에 참석하며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 이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애와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문화적응과 사회통합을 지원하며 지식과 실천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뉴브릿지'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소는 연구와 교육은 물론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실현하는 다리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세계화 추이에 맞게 한반도에서 이주가 차별이 아닌 가능성이 되고, 통합이 동화가 아닌 공존이 되도록 연구 분야를 넓혀 갈 꿈을 가지고 있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