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행 제안 거부한 지인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넘겨 감금..."징역 10년"
알고도 팔아넘긴 죗값 '중형'...범행 가담 행위 인식 정도따라 처벌 차이
[서울=뉴스핌] 홍석희 김지나 김영은 기자 = "피고인 신 씨에게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한다."
10월 22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사기 범행 제안을 거부한 지인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 감금시킨 혐의로 기소된 신 씨에 대해 재판부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통상 검찰이 구형하면 법원은 그 절반 이상을 선고하는데, 이번에는 검찰 구형량 징역 9년 보다 더 높은 형이 선고돼 이례적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법정 선 보이스피싱] 글싣는 순서
1. 조직편 '9시 출근 9시 퇴근'…직원 한 명 잡혀도 멈추지 않는 '범죄공장'
2. 곽금주 "취업 절박함에 캄보디아行…조직적 범죄생활에 점차 순응"
3. 착취편 "징역살기 싫어요"…지적장애인, 왜 판사 앞에 서게 됐나
4. 노동편 '마동석팀' 그녀는 왜 '초선'이 됐나…일자리 잃은 청년들의 선택
5. "개별 검거해도 '일망타진' 어려워"…변호사 3人의 현장 분석은
6. 기술편 '친밀한 속삭임' 끝 입금계좌...신뢰까지 해킹한다
7. "일반인 목소리도 3초면 복제…해결책은 국가간 공조"
8. 완결 죗값편 '감금' 알고도 지인 범죄조직에 넘긴 자의 최후
◆ 지옥의 11일…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감금된 황 씨, 왜 갇히게 됐나
![]() |
| [이미지=홍석희 기자, ChatGPT 활용] |
피고인 박 씨와 김 씨는 각각 배달대행업체와 파스타 음식점을 운영하던 평범한 사업자였고, 피해자 황 씨는 그 파스타 음식점의 종업원이었다. 셋은 김 씨를 매개로 안면을 튼 사이였다.
이들은 국내에서 대포계좌를 모집해 캄보디아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브로커' 신 씨와 연결되면서 급속히 범죄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수입 차량 차대번호만 알아오면 1인당 몇천만 원씩 벌 수 있어!"
2024년 11월경, 신 씨가 제안한 범행 방식은 이랬다. 수입차 문턱 안쪽에 기재된 차대번호만 확보하면 해외 딜러에게 판매하는 것처럼 속여 돈을 송금받고, 차량은 보내지 않은 채 수익을 챙기는 방식. 박 씨와 김 씨는 제안에 응했고, 박 씨는 황 씨에게 차대번호를 알아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황 씨는 지정된 날짜에 BMW 매장을 찾지 않았다. 이것은 곧바로 폭압적 협박으로 돌아왔다. 신 씨는 박 씨와 김 씨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6500만 원 손해, 너희가 물어내!"
결국 박 씨 명의로 6500만 원 채무를 인정하는 공정증서가 작성됐다.
돈을 갚지 못한 두 사람을 향해 신 씨가 제시한 '해결책'.
"황 씨를 캄보디아로 보내라. 호텔에 며칠 머물다 오면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말해라. 그러면 네가 갚아야 하는 6500만 원 채무를 없애주겠다." -신 씨가 박 씨에게 한 제안
"황 씨와 함께 캄보디아에 다녀와라.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같이 가서 데리고 오면 된다." -김 씨가 김 씨에게 한 제안
신 씨로부터 협박을 받은 박 씨와 김 씨는 결국 황 씨를 캄보디아 조직으로 넘기는 반(半)협박성 제안에 응하게 됐다.
그렇게 캄보디아로 넘어간 황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끌려가 11일 동안 감금된 뒤 돈을 갈취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숙소를 찾아오면서 간신히 조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신 씨 중형, 공범들은 구형보다 낮게 선고...'죗값' 가르는 기준은
![]() |
| [이미지=홍석희 기자, ChatGPT 활용] |
"신 씨는 박 씨, 김 씨를 협박해 결과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이 사건 범행에 가담시키고, 분담할 실행행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했으며, 처음부터 피해자가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에 의해 상당 기간 감금되리라는 사정을 알면서 피해자를 국외로 이송한바 등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한 정도가 매우 중하다." -피고인 신 씨에 대한 재판부 판결
감금이 될 것을 알고도 지인을 팔아넘긴 피고인 신 씨에 대해 법원은 죗값을 엄중하게 물었다. 신 씨 여기에 두 공범을 협박한 혐의까지 더해져 결국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반면 범행에 가담한 피고인 박 씨와 김 씨에 대해선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며, 검사 구형량인 7년과 5년에 못 미치는 형이 내려졌다.
박 씨와 김 씨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이 사건 각 범행에 공모·가담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확정적 고의로 판단하진 않은 것이다. 미필적 고의와 확정적 고의는 둘 다 고의 범죄에 해당하지만, 피고인의 범죄 결과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미필적 고의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반해, 확정적 고의는 범죄 결과를 직접 의도하거나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경우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 고의가 필요한데, 이때의 고의는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 고의로 크게 구분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기망이나 사탕발림에 속아 가담하게 된 경우에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처벌을 피할 수 없으나, 자신이 가담하는 행위가 보이스피싱인 줄 명확히 알면서도 가담한 확정적 고의의 경우와는 그 처벌의 정도를 달리하게 됩니다." 검찰 보이스피싱 전담수사부 출신인 이태훈 변호사(법무법인 YK)의 설명이다.
또한 보이스피싱 범행에 있어 피고인이면서 피해자인 경우가 있는데, 피고인에게 피해자성이 있을 경우 이 점이 부각되면 재판부는 참작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있어 피해자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자신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부에서는 피해자성이 있다는 점을 양정적 측면에서 참작해 주게 됩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한 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라는 점을 조금 더 부각하면 참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외 보이스피싱 사건을 다수 수임하고 있는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의 설명이다.
"보이스피싱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여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최말단 가담자의 경우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린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수거책 본인도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범죄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여러 표지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세심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태훈 변호사는 말했다.
abc123@newspim.com














